반극동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전기처장
반극동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전기처장

난 번 추석연휴에 영화 두 편을 봤다. ‘남한산성’과 ‘아이 캔 스피크’인데 모두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한 것이다. 남한산성은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김훈의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을 맞아 청나라의 침입에 쫓겨 국왕과 조정대신들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고 결국엔 인조가 청나라 군대에 무릎을 꿇은 치욕적인 이야기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 자료와 2007년 미국하원에서 일본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된 자료로 만들어졌다. 위안부란 사실을 숨기고 혼자 살아가면서도 영어공부에 매달린 주인공 나옥분 할머니는 마침내 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하러 미국으로 간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위안부 명단에 등록되지 않음을 문제삼자 영어를 가르친 박재민은 위안부 당시 찍힌 사진 한 장을 가져가 결정적증거로 인증 받는다. 그 결과 역사적인 결의안이 통과된다. 이처럼 최근 영화는 역사와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는 그 본질상 재미를 추구하기에 내용의 허구적 추론도 포함되지만 역사적 기록과 근거 자료를 밑바탕으로 제작이 되어 지고 있다.

나와 가족의 삶은 PC를 구입한 때부터 본격적으로 기록됐다. 뭐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난 컴퓨터도 다른 사람에 비해 일찍 구입했다. 1991년 가을 무렵인데 영주에서 근무할 때였다. 네 살배기 아들은 그걸 갖고 게임하기 좋아했고 난 뭘 할까 고민하다 가족신문을 만들기로 했다. 워드프로세서도 ‘한글’이 아닌 ‘하나워드’시대였다. 그해 12월에 첫 신문을 시작으로 2000년 마지막 40호를 낼 때까지 10년간 발행했다. 처음엔 가까운 가족과 직장동료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점점 늘어나 약 800여부까지 찍어 가족 모두가 모여 봉투를 일일이 붙여 우편으로 보냈다. 또 다른 것을 찾다가 PC통신을 시작했다. 나우누리 ‘기차동’이란 동호회에 가입해 철도소식을 스크랩해 올렸고 철도여행정보도 제공했다. 모뎀 접속시절인데 1998년엔 가족 홈페이지까지 개설 운영했다. 결혼 후 매 연말이 되면 그 해 일어났던 가족 내 사건들을 몇 개의 꼭지로 정리해 지금까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부터 나와 우리가족 기록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직장에선 1987년 작은 보직을 맡고부터 다이어리를 적었다. 지금까지 30권의 노트가 쌓여 있다. 매달 받은 봉급명세서도 모았다. 엑셀프로그램을 배운 후에는 엑셀 파일로 관리했는데 1995년도부터 현재까지 정리돼 있다. 그 외에도 사촌이 32명이나 돼 주소록을 만들어 정리했고, 족보계통도를 알기 쉽게 그려 종친사람들과 공유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동영상 찍기를 좋아했고 그때 찍은 영상이 내 블로그에 저장돼 있다. 필름사진도 찍을 때마다 정리하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앨범에 담아 보관했다. 2007년에는 홍보실에 발령 받았는데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덕분으로 홍보실을 떠나기 직전에 첫 번째 책을 펴냈다.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2009년 말부터는 페이스북을 위주로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등 SNS로 갈아탔다. 2008년 10월부터 직원들에게 매일 1분짜리 메일을 보냈고 SNS에 공유했다. 그 자료를 모아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펴냈다.

글뿐만 아니라 사진과 영상은 기록을 더 생생하게 한다.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부착되면서 사진과 영상 기록이 급속도로 쌓이고 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휴대폰은 SNS 사용으로 개인 및 단체의 활동자료들이 수없이 누적되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나 기관이든 쌓인 것들을 언제든지 볼 수 있고 검색까지 가능하니 더욱 편리하다. 기록은 역사이고 미래이다. 과거를 되돌아 봐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내 기록들이 정리돼 책으로 나왔고, 과거 사진 한 장이 위안부로 인증되듯 개인의 기록 하나하나는 모두 소중하다. 퇴직이 가까워지니 내 발자취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모든 생활에 역사가 있다’란 셰익스피어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내가 떠난 후, 내 죽은 후 나의 삶도 한편의 영화소재로 그려질 수 있을까? 사람마다 살아온 삶의 발자취는 자기 자식과 후배들에게 비춰지고 있다. 그것이 내 흔적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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