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적 관점에서의 중요성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달성하는 프레임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알다시피 자본이나 노동의 투입은 물질적 한계로 인해 무한대의 투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적인 투입 요소의 양을 늘리지 않은 채 생산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으로 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기술혁신의 진화적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다. 이는 혁신의 대부분이 기존 혁신을 기반으로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역사를 들여다보면 기술혁신 과정에서 점진적이냐 또는 파괴적이냐는 혁신의 정도 등에 차이가 있었을 뿐, 기존 기술과의 연계성 없이 발생한 기술혁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경로 의존성 때문에 산업 내의 주요 기술개발 경로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주체는 후속 혁신에 대해 유리한 상황을 갖게 되며, 기존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주체가 갑자기 뛰어들어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 내거나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독점적 지위의 영속과 산업 내 추월의 어려움과 같은 특징은 에너지, 수송, 정보 분야 등 시스템적 특징을 갖고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산업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연결성을 기반으로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다른 산업에 비해서 ‘잠김 효과(Lock-in Effect)’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의 경우에는 소비자들 입장에서 공급받는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 애착과 충성심을 갖기 보다는, 망과 같은 물리적 제약 및 관련 인프라 구축비용 등의 측면에서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를 계속 이용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전력분야에서 전기설비들은 망의 특성 및 구조에 종속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기존의 기술적 진화와는 다른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주요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타 기술, 특히 정보통신 기술과의 융합 및 정부 정책 방향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

현재의 산업 동향을 중심으로 전기설비의 주요 진화 방향에 대한 키워드를 뽑아 보면, 크게 지능화 및 친환경화로 축약 할 수 있다. 먼저, 지능화라 함은 설비들의 상태 진단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 제고이다. 관리적 효율성 향상을 위해 설비들에 대한 측정(measure) 및 감시(monitoring)가 선행되어야 하는 만큼, 첨단 센서의 부착과 통신기술 접목으로 인해 기존에 파악하기 어려웠던 데이터의 수집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이를 통한 각종 데이터 분석과 활용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대표 기업들인 GE, ABB, SIEMENS 등도 꽤 오래전부터 정보통신 기술을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함하여 소프트웨어 기반의 인프라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해 오고 있다.

다음으로 친환경화라 함은 친환경 기기의 개발 확산 및 기존 설비들에 대한 친환경 기술의 적용이다. 기기들의 생산 및 사용, 그리고 처리 등 전주기적인 관점에서 환경적 요소를 고려한 설계 및 운영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의하면, 재생에너지 비율의 확대와 친환경적이고 스마트한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에너지 산업의 주요 방향으로 잡았다.

덩치가 크고 연계되어 있는 시스템일수록 기존 방향으로의 진행에 대한 관성이 크기 때문에 방향을 새롭게 전환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요구한다. 따라서 국가든 기업이든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혁신의 큰 방향에 맞게 보유 자원들을 투입함으로써 그 효과를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국가든 기업이든 방향이 틀렸을 때의 빠른 속도는 오히려 재앙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 자원 투입 이전에 그 방향에 대한 다차원적 검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전기연구원 손성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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