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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편지(58)갈맷빛 아름다운 ‘지리산’
"갈맷빛 지리산 보러 지금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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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세찬 장마가 지나가고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입니다. 그리 애태우던 가뭄이 해갈된 것은 다행이지만 장마전선이 오락가락 하는 탓에 습한 날이 계속 됩니다. 아침 내내 마당귀에서 구름모자를 쓴 큰 산을 올려보며 오락가락 하는 마음을 다잡고 카메라배낭을 챙겨 노고단으로 향했습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경이야 만날 수 없겠지만 안개 속의 야생화를 볼 수 있겠다 싶어 길을 나섰습니다.
자욱한 안개 숲길에 드니 서늘한 기운이 밀려옵니다. 마을보다는 평균 5도씨 정도가 낮은 기온이니 그야말로 자연 에어컨이지요. 숲을 살피면서 천천히 산길을 걷다가 내가 노고단을 몇 번이나 올랐을까 생각해보니 한 해에 스무 번만 올랐다 해도 백 번은 족히 넘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자주 오르는 산길이지만 오를 때마다 새롭기만 합니다. 오늘의 바람과 안개가 새롭고 새소리와 피고 지는 꽃들도 다 새롭습니다. 해마다 보는 꽃이지만 지난해의 꽃빛이 아니라 새로운 꽃빛입니다.
맨 처음으로 인사를 걸어주는 꽃은 산수국입니다. 본디 꽃은 너무 작고 그늘에 피어 벌나비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헛꽃(가짜꽃)을 피워놓고 벌나비를 불러 모으는 재주꾼입니다. 그 뜻을 생각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경이롭기만 합니다.
다음으로 인사를 걸어오는 꽃은 함박꽃입니다. 맑고 참으로 맑은 꽃이 함박웃음을 웃는 것처럼 환히 피어있습니다. 한창 때가 지나 시든 꽃 사이에 몇 송이가 남아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줍니다. 함박꽃은 북한의 국화입니다. 원래 국화는 진달래였는데 목란(함박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생명력이 강하니 화중왕(花中王)"이라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1991년도에 국화로 지정 되었답니다.
노고단산장에는 붉은 꽃빛이 확 눈에 들어오는 하늘나리가 한창인데 작년에는 겨우 두 송이었던 것이 식구가 많이 늘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지리터리풀과 원추리는 이제 막 몇 송이가 피기 시작했군요. 활짝 핀 꽃을 보기에는 아무래도 열흘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노고단 정상의 멸종위기식물인 날개하늘나리를 보기에는 마치 맞는 때 찾아온 것 같습니다. 안개 속에서 감시카메라의 보호를 받으며 피어 있는 날개하늘나리는 금세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자태를 보여주더군요.
달팽이처럼 가다 쉬다 올랐다 내려오는 산길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꽃은 병조희풀입니다. 늘 눈길만 주고 그냥 지나치던 꽃이었는데 오늘은 안개비에 젖은 자주꽃빛이 너무 마음에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돌아와 꽃들과의 조우를 담은 한편의 글을 썼습니다.

반나절 내내 돌계단길을 오르내리며 책을 읽었다
산수국편 함박꽃편 하늘나리편
날개하늘나리편 병조희편
수 십 번을 읽어도 늘 새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왕복 십 킬로의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그 어느 경전보다도 푸르고 푸른책이다 - 노고단 -

이 글을 쓰고 나서 우연히 읽은 퇴계 이황의 ‘讀書如遊山’을 보고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산을 노니는 것이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뜻이니 내 생각과 사백년 너머 선생 글의 뜻이 어딘가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비가 올 듯 말 듯 그런 후덥지근한 밤이지만 큰 산이 나눠준 기운 탓에 정신은 아주 시원한 밤입니다.
참 요즘 산빛이 갈맷빛입니다. 초록이 짙어지다 못해 검어지는 그런 산빛, 이름도 참으로 예쁜 그 갈맷빛을 보러 지리산으로 오셔요!
작성 : 2017년 07월 27일(목) 09:46
게시 : 2017년 07월 28일(금) 10:05


글 + 사진 │ 김인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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