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어쩌나” “일자리 없어지나”…불안감 증폭

지난 14일 한수원이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일시중단을 결정하면서 한수원 노조와 발전소가 위치한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수원 노조는 이사회 의결 다음날인 15일 곧바로 울산 신고리 원전 건설현장 앞 농성장에서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울산 울주군 인근 주민들 역시‘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반대 범울주군민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한수원 본사를 찾아가 이관섭 한수원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등 반발의사를 명확히 했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지만, 설마 했던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이 현실화됨에 따라 한수원 직원들은 물론, 건설업체, 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의 속내를 들어보기 위해 17일 울주군 서생면 마을을 직접 찾아갔다.

‘지역경제·원전산업 활성화 위해선 건설 지속돼야...세대 간 차이는 뚜렷’

가장 먼저 지난 15일 한수원 노조와 마을주민들이 집회를 열었던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원전 사거리를 방문했다. 이날도 시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현장을 찾았는데 한수원 이사회의 결의와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을 규탄하는 플랜카드만 나부낄 뿐 거리는 한산했다.

차를 타고 서생농협 구동지점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하필 이날은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돼서인지 마을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다행히 더위를 식히기 위해 들어간 모닝할인마트의 한재동 사장은 “본인이 과거 울주군 시의원과 서생면 주민협의회장을 역임했었다”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조치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산업부가 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한수원에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지시해놓고선 협조요청을 한 것이라며 적법하다고 해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한수원은 협력업체들의 손실과 피해보상 규모를 줄이기 위해 이사회를 황급히 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한수원을 두둔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원전 건설에 대해 반대했었지만, 40년간 마을 주민들이 희생한 덕분에 우리 기술로 한국 표준형 원전을 개발하고, 해외수출까지 성공함으로써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특히 신고리 5·6호기는 우리가 독자 개발한 한국형 원전 APR1400이어서 해외 수출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꼭 건설돼야 한다. 야3당이 힘을 합쳐서 대정부 투쟁이라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서생면사무소에서 만난 50대 남성 전준희 씨(가명)도 “이미 이 지역은 원전이 밀집된 지역이어서 더 이상 다른 지역에 피해를 안겨줄 수 없으니 신고리 5·6호기를 자율유치하자고 마을 주민들이 의견을 모았다”며 “그런 지역주민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건설을 중단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20~30대 젊은 주민들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서생농협 본점 앞에서 만난 30대 주부 정지영 씨(가명)는 “이 지역에 40~50년 이상 거주한 어르신들은 마을에 원전이 들어선 덕분에 그린벨트도 해제되고 보상도 받으면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이유로 원전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만, 젊은 세대들은 조금 다르다”며 “이제는 원전을 차츰 줄여야 하고, 그 시작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20대 여성 김은실 씨(가명)도 “솔직히 원전을 계속해서 건설해야 할지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지만,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줄여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며 “다만 신고리 5·6호기는 매몰비용이 크고, 공정률이 30%를 넘긴 만큼 건설을 중단하는 것은 낭비라고 본다”고 말했다.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 생존권 투쟁...그 외 지역과는 견해 차 뚜렷’

발전소가 위치한 서생면 주민들은 생존권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서생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50대 여성 김순자 씨(가명)는 “한수원이 발전소를 짓겠다며 부지를 매입하고,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건설사업이 중단되면 각종 재산권 피해보상이 취소되고, 지방세수도 수천억원이 줄어들게 된다”며 “8000여명 주민들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고, 지역의 소기업과 상인들, 농어민들은 도산할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간 간절곶 칼국수집 사장 유재석 씨(가명)도 “서생면 일부 주민들은 개인적인 보상 차원에서 반대를 하고 있지만, 솔직히 보상받을 게 별로 없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지역고용 감소와 경제적 피해로 인한 생존권을 우려하고 있다”며 “서생면 밖의 사람들은 발전소 주변지역에 산다고 하면 많은 보상이라도 받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장학금 지원과 전기요금 인하 혜택 이외에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앞으로 신고리 5·6호기 중단여부를 결정하게 될 공론화위원회와 관련해 “서울이나 대도시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하다”며 “원전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반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우리 주민들이 겪고 있는 불안감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서생면 밖 울산 시내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영화 판도라의 상영 이후 원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커진 게 사실”이라며 “더 이상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신고리 5·6호기는 이미 건설이 30% 가량 진척됐고, 원전 관련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한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수원 직원들의 불만과 건설업체 직원들의 불안감도 고조’

한수원 직원들은 지난 14일 긴급 이사회 개최를 통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한수원 노조는 “한창 진행중인 공사를 국무회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몇 줄짜리 협조공문을 통해 공사 중단을 합법화 시키는 것을 보면 ‘이것이 촛불이 만든 정부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본인들이 결정해 진행한 공사를 정권의 요구라 해서 이를 다시 뒤집는 이사진들을 보면 인간적인 동정이 가면서도 권력의 눈치만 보는 소신 없는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도둑이사회는 원천무효임을 선언하고 무효 또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전소 건설 현장 근처에서 만난 삼성물산 김지홍 전기·계측팀장도 3개월간 공사 중단조치이후에 대해 불안감을 드러냈다.

김 팀장은 “신고리 건설 현장에 온 지 만 2년이 됐다. 공사가 끝나려면 아직도 4~5년이 더 남아서 젊은 직원들은 근처에 집도 구하고 했는데 갑작스레 건설 중단 얘기가 나와 당혹스럽다”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건설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일부 협력업체 직원들은 불안감에 공사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임시 공사 중단조치가 내려진 만큼 현재로서는 현장에 남아 철근이 녹슬지 않도록 방청하고 포장을 씌우는 등의 유지 관리하는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며 “만일 영구 중지로 결론이 내려질 경우 건설사와 협력업체 모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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