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시기에 취임해 결국 가장 힘든 역할까지 맡게 돼...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도 산적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지난해 8월 산업부 1차관 퇴임식에서 “확실히 권력이 정부에서 여의도나 시민단체로 가버렸다. 우리는 세종에 와 있고, 권력은 여의도에 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의 말처럼 점차 권력이 여의도와 시민단체로 쏠리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이런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에너지 정책도 더 이상 공무원들이 수립하는 게 아니라 국회와 시민단체 출신들 주도로 수립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라 40년 넘게 이어져 온 원자력 진흥정책이 막을 내리고 탈원전·에너지전환시대가 막을 올리게 됐다.

이 사장은 과거 “에너지정책은 길게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5년 마다 뜯어고치니까 탈이 난다”며 “정책담당자들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긴 눈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랬던 그가 새 정부 들어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만큼 최대한 협조하겠다”며 “한수원은 탈원전을 기조로 한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사장이 정부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한수원이 먼저 공사 중단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두둔하고 있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본인의 자리보전을 위해 소신을 버린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산업통상자원부는 10일 “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한수원에 신고리 5·6호기 일시 공사중단 협조를 요청한 것은 위법한 것이 아니다”며 이 사장의 부담을 덜어줬다.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산업부가 자체적으로 원전 건설 중단과 관련한 협조공문을 보낸 것은 위법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해명한 것이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향후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한수원 노조가 회사에 손실을 끼칠 것이란 이유로 이사회 참석자 전원을 배임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고, 시공업체들도 손해배상 청구 등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울주군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 이들과의 관계 개선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과제다.

이 사장은 이번 이사회 결정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발 맞춰 국내 원전건설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본격적으로 맡아야 한다.

이 사장은 경주 지진으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된 시점인 지난해 11월 한수원 사장에 취임해 그동안 원전의 안전성을 알리는 데 가장 주력해 왔다.

한수원은 2010년 이후 원전사고 은폐의혹, 품질검증서 위조문제, 원전마피아라는 말을 탄생시킨 납품비리 문제, 해킹에 따른 원전문서 유출 등으로 큰 곤욕을 치러왔기에 한수원 사장직은 그에게 골치 아픈 자리였을 게 분명하다.

어찌됐든 그는 한수원 사장에 취임했고,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는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탈원전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천주교 주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지난 5월 열린 한 포럼 기조강연에서 “국민들이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해 걱정하시는데 한수원 사장으로서 얼마나 안전해야 충분히 안전한 건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특히 사용후핵연료는 후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어서 원전을 계속하려면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탈원전 시대에 따른 원전의 해체와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관리는 물론, 좌절감에 빠져 있는 한수원 직원들을 다독이며, 현재 운전 중인 원전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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