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라온위즈 대표(스피치디자이너/방송인)
김수민 라온위즈 대표(스피치디자이너/방송인)

얼마 전 방영된 KBS2 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여주인공의 혹독한 면접 장면이 대한민국 취준생들을 울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꿈에 그리던 아나운서 시험을 보게 된 주인공에게 텅 빈 스펙란을 보고 면접관은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항의하는 그녀에게 면접관은 ‘다른 면접자들이 유학 가고 해외봉사 나갈 때 뭐 한 건가,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하는 거다’라고 질책했고 그녀는 ‘남들 유학 가고 해외봉사 갈 때 저는 돈 벌었습니다‘라며 씁쓸히 웃었다. 취준생의 가슴 뿐 아니라 자식에게 넉넉한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한 부모들의 가슴에는 피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업무에 적용되지도 않는 스펙을 속절없이 원하는 기업문화와 편견도 문제지만 그런 스펙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우리의 현실이 더 문제다.

청년 실업만 심각한 건 아니다. 작년 한 해, 자영업 91만개가 폐업신고를 했다.

가장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일반 요식업이다 보니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횡포에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고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해 시행착오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들의 취업도 대부분 계약직이 많다.

현직에 있는 언론사 선후배들을 만나면 퇴직 후의 삶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한다. 어느 누구보다 엘리트인 그들 중에는 운이 좋아 기업체의 CMO나 홍보 이사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전관예우도 2-3년일 뿐, 보직 이동이 잦은 언론사 후배들만 믿고 그 일을 계속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매스미디어가 지고 1인 미디어가 경제와 여론에 중심축이 되어 수십, 수만의 팔로우를 이끄는 SNS 세대에 레거시 미디어 홍보는 한계를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위 안정된 갑의 위치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퇴직 후 맞이하는 것은 늑대같이 달려드는 사기꾼들의 달콤한 묘수다. 퇴직금 잃고 몇 번 속다 보면 한번에 돈을 만회하겠다는 생각에 다단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시련을 이겨내고 남을 돕는 위치로 간 사람들이 있다. 이 시대 최고의 펀드매니저 조지소르스는 젊은 시절 식당 웨이터로,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미래를 준비했고 출판사마다 자신의 글을 쓰레기라며 받아주지 않던 도스또엡스키는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3만명에게 무료 개안수술을 해 준 실로암 안과병원장 김선태 목사는 6.25때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난 후 열 살 나이에 폭발물로 인해 실명했을 때, 자신을 죽이고 피난 가려는 고모의 계획을 엿듣고는 밤새도록 넘어지고 부딪치며 피땀범벅이 되도록 줄행랑을 놓아 목숨을 건진 후 고아와 거지의 비참한 생활을 이겨낸 사람이다.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도 어린 시절 축구공에 맞아 실명한 후 온가족을 차례로 잃는 극한의 슬픔 가운데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기도하며 좋은 반려자를 만나 백악관 장애인정책 차관보까지 지냈다. 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해 둘째 아들이 안과 명의가 되었으나 그는 실명이라는 고난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음에 감사하며 끝내 보고 싶은 가족의 얼굴 보기를 포기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산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가장 큰 새인 알바트로스는 수천 킬로를 날갯짓 한번 하지 않고 폭풍을 가르며 날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에는 3미터에 이르는 큰 날개로 인해 빨리 움직이지 못하고 뒤뚱거리는 모습 때문에 바보새로 불리운다. 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면 절벽으로 올라가 모든 생명체들이 숨는 거센 폭풍우를 맞아 그 큰 날개를 펼치며 비상한다.

예전에는 30세까지 공부와 결혼, 취업을 하는 준비과정을 갖고, 30년을 일하다 60세에 은퇴했지만, 이제는 평균수명이 90살이 되면서 30년의 주기를 세 번 맞이하는 트리플서티스(Triple Thirties), 즉 은퇴 후 3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든, 은퇴 후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베이비붐 세대든 장애물들과 역경의 폭풍우를 타고 알바트로스의 날개를 펼칠 시간들을 준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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