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기업 중심으로 필요성 제기, “공감대 없고 피해 불 보듯”
공론화 안 거친 에너지공공기관 기능조정 강행 중단 요구 확산

전기안전공사의 V체크인증 이관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놓이자 인증기업들을 중심으로 ‘전기안전공사 전기용품 시험․인증기능 폐지 재검토’ 여론이 일고 있다.

전기안전공사 전기용품 시험․인증기능 폐지 방안은 이해당사자에 대한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결정됐고, 정권도 바뀌어 추동력을 상실한 만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전기안전공사의 V체크인증 업무를 폐지하는 것은 정부의 에너지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 중 하나라 산업부 단독으로 재검토 여부를 결정할 수 없지만 함께 거론된 방안 가운데 전력판매시장 개방, 발전사 주식 상장 등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이슈들이 상당수인 만큼 함께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공감대 못 얻어=기획재정부는 지난해 6월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방안을 마련하면서 전기안전공사의 전기용품 시험·인증기능 폐지를 결정하고, 올 상반기까지 관련조직과 기능을 폐지하도록 요구했다.

시험·인증기능은 법정업무가 아닌 비핵심 업무이며, 민간에 경쟁기관이 다수 존재하는 만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댔다.

대신 일반용전기의 사용전점검 업무를 모두 전기안전공사로 일원화해 전기안전관리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했다.

때문에 당초 계획대로라면 전기안전공사는 V체크인증을 내준 총 48개사(70개 공장, 5월 31일 기준)의 인증업무를 올 6월 말까지 다른 KAS인증기관으로 이관하고, 인증센터를 폐지해야 한다.

하지만 V체크인증서에 적힌 인증기관의 명칭을 ‘전기안전공사’에서 다른 기관으로 변경한 업체는 아직 단 한 곳도 없다.

이처럼 인증기관을 옮긴 업체가 전무한 것은 자가용전기설비 검사업무 처리규정(산업통상자원부 훈령)이 개정되지 않아 기관 변경에 부담을 느낀 이유도 있겠지만 일단 ‘버티고 보자’는 심리도 존재한다는 게 인증업체들의 귀띔이다.

한 인증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방안 중에 실제로 공감을 얻으면서 완료된 게 얼마나 되느냐”면서 “전기안전공사의 V체크인증 이관도 다른 기능조정방안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답보상태로 가다보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증업체 대표는 “법정 전기안전 기관인 전기안전공사가 점검·검사과정에서 접하는 전기설비의 안전성을 직접 평가해 인증을 주고, 보급을 장려하는 것을 비핵심 업무로 본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면서 “V체크인증은 KAS기관 중에서도 전기안전공사가 보장할 때 가장 큰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전기안전공사의 시험·인증기능 폐지는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증분야의 한 전문가는 “정부가 임의인증 업무에 대해 강제적으로 폐지를 결정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정부가 문제의 발단을 만들고, 기관들끼리 알아서 뒤처리를 하는 상황이라 시험인증기관이나 기업들 모두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중소기업, 재검토 여론 ‘봇물’=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방안에 대한 불만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달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8개 에너지 공공기관 노조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안 재검토를 촉구한 바 있다.

어 의원은 성명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며 “강행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각 공공기관에 대한 기능조정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이 해당 기관과 업계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전기안전공사의 V체크인증 이관 방침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피해를 선량한 중소기업들이 보기 때문이다.

전기안전공사에서 V체크인증을 받은 총 48개사 가운데 상당수가 고․저압 전기기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전기안전공사가 사용전검사를 할 때 우리 제품에 대해 잘 몰라도 자기들이 인증해준 V체크마크가 있으면 인정을 해줬다. 또 전기안전공사에 요청하면 우리 제품을 모르는 발주처에 연락해서 제품 특성이나 안전성 등에 대해 설명해주는 서비스도 가능했다”면서 “하지만 V체크인증 업무가 민간인증기관으로 모두 넘어가면 이런 무형의 혜택도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공공과 민간의 시험인증기관들 업무를 재정립하는 것보다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경제활성화를 유도하는 게 더 중요한 정부 역할이 아니겠느냐”면서 “아직 전기안전공사에서 다른 KAS기관으로 인증업무를 이관한 업체가 없고, 전기안전공사의 인증센터도 유지되고 있는 지금이 재검토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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