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로마시가 에너지 효율화 정책의 일환으로 길거리의 조명을 LED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대다수의 시민들은 “로마의 거리와 문화재를 돋보이게 하는 빛이 은은한 주광색 조명”이라며 “LED조명은 밝고 환해 미관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사업 철회를 거세게 요청했다.

도시 에너지 효율화 측면에서는 전력소모가 적으면서도 밝은 빛을 내는 LED조명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경관 조명 측면에서는 이를 역행하는 사업이니 고민이 될 만하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로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는 도시빛정책과를 신설해 경관조명 사업을 활성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과 서울을 둘러싼 성곽, 사대문은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조명의 밝기와 색온도를 조절해 도시의 미관을 살리는 데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서울시 환경정책과 소속의 에너지효율화팀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에너지절감을 따를 것이냐, 도시의 야경을 빛낼 것이냐는 모두가 납득할만한 두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서울시청이 아닌 조명업체들이다.

두 부서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위해 상반된 색온도 기준을 주장하면서, 미리 제품을 준비해야하는 업체들은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있다.

상황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이 같은 문제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1년도 넘은 두 주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데는 ‘이를 해결할 의지가 부족한게 아닐까’ 혹은 ‘부서 간 의견을 정리해야 할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의심도 들게 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자도 이런데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업체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일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한 조명업체 대표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두 부서 간의 주장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정책적 다툼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건 오롯이 업체들입니다. 업체들은 이 와중에도 생계를 걸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어느 쪽이라도 신속히 결론을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기자가 하는 의심과 업체들이 품고 있는 불만을 해갈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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