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기자는 선생님들로부터 사랑의 매를 많이 받는 학생이었다.

요즘에야 학교에서의 체벌이 뉴스가 되는 ‘무서운’ 시절이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기자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선생님들이 주시는 ‘사랑의 매’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정도의 당연한 것이었다.

숙제를 안해서,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친구 녀석들과 수업을 빼먹고 도망갔다가 잡혀서 등등 체벌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씩은 ‘이게 왜’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런 때에도 그냥 맞기는 했었다.

주입식 교육의 끝자락 세대인 기자에게 있어 ‘왜’라는 질문은 낯설다.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이 몸에 배어 있는 대한민국의 기성세대에게 ‘왜’라는 단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권위에 대한 도전, 반항의 의미로 인식되기 일쑤다.

‘장유유서’의 아름다운 전통이 ‘나이=권력’인 의미로 곡해돼 버린 불편한 진실도 ‘왜’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데 한 몫을 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시장의 질서는 그간 우리가 외면해 온 ‘왜’라는 질문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물질적, 기술적 요소가 충분치 않은 성장 단계의 핵심 가치는 ‘어떻게’다. 먼 해외사례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이전까지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끈 동인(動因)은 ‘어떻게’였다.

성과만을 놓고 모든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제시하는 ‘어떻게’라는 단어는 우리 삶의 핵심 가치로 금새 자리매김했다.

이에 반해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경쟁으로 대표되는 미래 사회 가치의 꼭대기엔 ‘왜’라는 근본적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소비자가 이 서비스를 왜 구입해야 하는지,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가장 매력적으로 어필함으로써 ‘왜’라는 질문을 해결해 주는 것이 시장의 새로운 질서로 대두되고 있는 것.

우리가 그동안 스스로에게 가장 인색했던 한 글자 ‘왜’에 걸어 뒀던 빗장을 풀어낼 때에 비로소 4차 산업혁명이나 에너지신산업 등 미래 시장에 대한 해답을 손에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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