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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광장)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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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수 GE 그리드솔루션 부사장
지난 5월초 황금연휴를 가족과 함께 교토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교토 한 도시에만 일주일을 머물기에는 다소 시간이 많은 감이 있지만 현지에서 만난 프랑스 애들은 한 달간을 교토에 머룰 계획으로 왔다고 하니 우리가 머문 시간이 그리 과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교토는 7세기에 당나라 수도인 장안을 모방하여 만든 계획된 도시로 천 년간 일본의 수도였다.
현재 인구는 147만명인데 연간 찾아오는 여행객이 5천만명이라고 한다.
오늘날 태국의 전체 여행객이 연 3200만명인데 이로 인해 도시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교토 한도시가 그보다 훨씬 많은 5000만명을 수용할 정도라면 주거, 도로 및 교통, 상하수도 등이 거주 인구보다 훨씬 많거나 커도 수용 가능하게 설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7세기에 만들어져 21세기까지 내려오는 동안에 물론 확장되고 개선되었겠지만 수없이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수용하며 도시로서의 기능을 원활히 하는 것을 보면 찬탄을 금할 길이 없다.
19세기 런던에서는 도시를 흐르는 템스강에서 심한 악취가 풍기고 전염병이 만연 했는데 하수도 정비가 인구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세계의 수도인 런던조차도 인구증가에 따른 위생 문제를 해결 못 했는데 런던 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에도는 강도 오염 되지 않고 전염병도 만연하지 않았다.
참고로 에도는 18세기 초에 인구가 100만명인데 그 당시 런던이나 파리가 40만 이었다고 하니 세계 최대도시였을 것이다.

많은 유동인구로 인해 식당은 어디나 언제나 대기줄이 늘어서 있다.
우리가족처럼 줄서서 기다리며 식사를 하기에 부적절한 사람은 항상 끼니때마다 곤욕을 치러야 했다.
밀리고 밀려서, 줄이 길어 포기하거나 준비한 음식이 떨어져 식당이 문을 닫거나, 그러다 보니 골목 안의 찾기 어렵고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다행히 맛이 좋았다.

오랜 전국시대를 거쳐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르러 전국을 통일한다.
이 당시 주요 영주의 세력을 30만석, 50만석 등 이렇게 쌀을 기준으로 파워의 등급을 매긴다.
1석은 한사람의 1년 먹는 쌀을 기준으로 정했다는데 무게로는 150㎏이다. 우리는 예전에 쌀 한가마니가 80㎏인데 거의 두 배의 양을 두 끼(옛적에는 점심이 없었다.)로 먹었으니까 대단한 식사량이다.
1석은 360평 이고 한 평은 한 사람의 하루 먹는 양만큼 쌀이 산출 되는 면적이다.
우리가 말하는 3.3㎡ 인지는 모르겠는데 한 평의 의미를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그리고 군사력은 1만석 당 300명의 군대를 가질 수 있는 경제력을 의미한다.
이에야스가 에도로 밀려가서 간척지를 개발해 만든 전체의 영지가 250만석이다.
이는 대략 군대가 8만명 정도 보유할 수 있는 경제력으로 토요토미가 가졌던 수준이다. 이 정도 세력으로 일본을 통일할 수가 있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강권으로 황무지나 다름없는 간토지방(지금의 동경)으로 밀려 갈 때 가신들은 강하게 반발했는데 그는 가신들을 달래 고향을 떠나 박토인 간토로 이주했다. 남들이 볼 때는 허허벌판 황무지인 그곳을 황금벌판으로 만들었다.
습지를 메워 농사 지을 수 있는 곳으로 메마른 땅에 메밀을 심었다.
동경은 잡히는 생선 중에는 청어나 붉은 살 생선 등 비린내 나는 것이 많아 진한 간장이 어울렸다. 가다랑어를 우려낸 진한 국물로 메밀소바를 맛있는 음식으로 변모시켰다. 간사이는 따뜻하고 비가 적은 기후가 밀재배에 적합해서 품질 좋은 밀로 만든 담백한 간장과 우동의 면발로 맛을 겨룬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거기에서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해 약점을 장점으로 만들었고 평화의 시대에 걸맞게 패러다임을 전환해 경제건설로 무사들의 힘을 분산했고 불만을 잠 재웠다.
리더란 그렇게 볼 수 있고 사람들을 이끌 수 있고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1900년도 뉴욕의 사진 속 도로위에는 마차뿐이다. 하지만 1913년 뉴욕의 사진에는 마차는 간 데 없고 차량만 도로에 가득 있다. 불과 13년의 세월이 수송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었다.
하물며 4차산업혁명은 몇 년이 아니고 몇 달 만에 우리의 산업현장을 말 그대로 혁명할 것만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은 데이터 분석부터라고 생각한다. 데이터는 많다고 재산이 아니다. 쓸모 있는 데이터만 재산인데 전체양의 불과 3%정도라고 한다.
400년 전 황무지였던 에도를 후에 세계적인 대도시로 변모시켰던 것처럼 4차산업혁명의 손길을 닿으면 오늘의 동경처럼 될 만한 산업이 있지 않을까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그려진 것처럼 하나님의 손길로 아담이 탄생했듯이 우리의 시선과 손길을 기다리는 산업이 있을 것이다.
작성 : 2017년 06월 01일(목) 08:20
게시 : 2017년 06월 09일(금) 10:59


양문수 GE 그리드솔루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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