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영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
허균영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

생각이 글로 옮겨졌다가 읽혀지면 원래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곡해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짧게 편집된 내용은 더욱 그렇다.

필자도 글을 쓰고 나면, 평소 본인하고 긍정적 교류가 많은 분들은 대개 원래 뜻을 잘 이해했다고 하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하시고, 전혀 교류가 없는 분들은 아마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원래 뜻을 상상하실 것이다. 이 부분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필자가 지난번 글을 쓴 이후에 가장 큰 변화는 뭐니 뭐니 해도 대선이 지나갔다는 점일 것이다. 과학기술인으로서 또한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소통에 기반한 합리적인 국내외 정책추진에 대한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번 대통령 공약 중에서 에너지 분야가 가장 지지를 많이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에너지 정책은 선거 이전부터 유력 후보들의 내용이 거의 비슷했다. 바로 석탄과 원자력발전소의 퇴출, 그리고 가스 및 신재생 에너지의 적극 도입이다. 짧은 공약집만으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범위와 깊이를 내 입맛에 맞게 곡해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에너지 정책이 미세먼지라든가 지진과 같은 안전 현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당장 돈을 좀 더 내더라도 마음 편하고 건강하게 살자는 국민 소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딸아이가 어렸을 때 같이 자주하던 보드게임 중에 젠가라는 것이 있다. 게임 방법은 나무 블록을 두 뼘 정도 쌓아 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아래 블록을 빼서 위에다 쌓다가 먼저 넘어뜨리는 사람이 지게 된다.

필자는 이 게임을 하면 항상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괸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보통은 임시변통을 의미하지만, 마지막에 무너져 내리는 블록 더미를 보고 있노라면 근본을 깎아 먹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맞지 않나 싶다.

현재 신재생 에너지를 도입하는 과정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것과 같다. 신규 과세와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이 필수적인데 아직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단지’ 각 가정의 전기료만 어느 정도 감수하면 된다는 언론보도는 심난하다.

모든 것이 같이 비싸지고 상대적으로 월급봉투는 얇아질 것이다. 민간 자본을 전력 수급에 끌어들이는 것도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가스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보완에는 동의한다.

부족한 윗돌을 채우는 과정은 산업 성장이며, 각 옵션의 전략적 가치를 끌어올려야 에너지 안보와 기저 및 첨두부하 해소를 위한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돌 말고 다른 나라 돌을 끌어와서 괼 수 있다면 좋겠다. 한정된 예산을 쪼개서 쓰면 다른 부분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어설프게 아랫돌을 빼내면 윗돌도 같이 무너진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다른 에너지원을 고사시키겠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아랫돌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질 수 있다.

긴 시각에서 보면 지금 국내에 발전소를 하나 더 짓고 덜 짓고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어차피 우리나라 산업은 밖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고, 발전소 개수는 여건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 건설 공정률에 상당한 진척이 있는 발전소들이 있다. 나름 지난 정부에서도 전문가들이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납득할만한 설명 없이 건설이 중단된다면 완급의 조절이 아니라 국민세금이 이번에는 저런 새로운 방법으로 증발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가치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은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는 지역의 원자력발전소는 불안 1순위이다. 눈앞의 위험이 사라져도, 그 뒤에 숨었던 위험이 불안을 또 몰고 올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이 정말 믿음직스럽고 신뢰할 수 있어서, 그래서 우리나라가 우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줄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면, 누구나 새 정부의 행로에 엄지척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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