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중기·벤처 위한 온라인 인프라 구축 중요

획일적 입찰방식, 시대 뒤떨어진 인증제도가 기술발전 ‘발목 잡아’
‘나홀로 전략’ 한계, 온디맨드·휴먼클라우드 등 전문가·전문기업 활용해야

4차 산업혁명이 산업계 전반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제조 분야에 ICT 기술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 영역이 만들어지고, 영화에서나 들어봤던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빅데이터, IoT 기술이 산업 각 분야에 접목되면서 효율성·안전성·편의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은 점차 가속도를 붙이면서 국내 제조업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과연 보수적·폐쇄적인 국내 전기업계는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저마다 ‘예스(Yes)’와 ‘노(No)’로 갈리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세종 원장을 만나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응역량이 취약한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의 높은 파고를 어떻게 극복하고, 생존전략을 마련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해석하는 시각은 제각각인데, 정확한 개념을 설명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비즈니스 모델이 새롭게 바뀌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단순했다. 때문에 선진국, 선도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뒤따라가도 성장이 가능했다. 이 기술은 단순하고, 단선적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면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복잡·다양해졌다.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복선이 얽혀 있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위기도, 기회도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하려면 소위 ICBM(IoT, Cloud, Big data, Mobile)이 보편화돼야 한다. 이런 온라인 인프라를 중소기업, 신생기업들이 전문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영역을 마련하고,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면 초기시장을 만들어주는 게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정부의 역할이라고 본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보나.

“아직은 미흡하다. 스마트팩토리만 보더라도 우리 중소기업들이 스마트팩토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나. ICT 기반을 깔고 있거나 여기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갖춘 기업이 별로 없다. 대기업은 어느 정도 마련돼 있지만 중소기업은 초보적 수준이다. 때문에 이런 중소기업들이 ICBM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 개발시대에는 건설, 항만, 공항 등 오프라인적인 인프라가 요구됐다면 온라인 시대에는 ICBM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현재 읽고 있는 빅데이터 관련 책에는 향후 정보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 있는 만큼 기업들에 빅데이터 접근 권한을 골고루 나눠줘야 양극화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변화에 대한) 기업들의 자각은 기본이다. 또 4차 산업혁명, 온라인 시대에 걸맞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기존의 대학교육이나 중소기업 재직자 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손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교육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지 않는다. 이런 교육을 대학에만 맡기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청년들은 기업에서 권한도 없다. 오히려 CEO, 의사결정자, 현재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기술, 정보를 공부하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중소기업 재직 근로자들에게 4차 산업혁명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점에서도 재교육 시스템 마련은 중요하다. 이런 활동은 일자리 안정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우리가 해외에서 배울 점은.

“일본에 가보면 18m 짜리 건담로봇이 있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이 건담로봇이 실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건담로봇이 성화 봉송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로봇이 도로에 나오려면 도로교통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은 특구를 만들어 이런 규제를 풀었다. 우리나라보다 규제 프리존이 잘 돼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산업을 위해선 그렇게 획기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산업이 꽃피려면 사람과 기술, 시장이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업종들의 활성화 과정에서 일본 사례를 보고 배울점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인프라 확충과 재교육 프로그램, 획기적인 규제개혁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실제로 현재 국내 기업의 여건과 구매시스템을 보면 이렇게 새로운 산업이 꽃피우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AI, 드론, 3D프린팅 등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시험기관, 인증체계, 초기시장 등이 만들어지고 테스트베드도 있어야 한다. 초창기에는 정부 조달시장이 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 체계는 신기술, 신제품이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달체계의 변화가 시급하다. 특히 최저가입찰은 ‘다른 기준은 중요치 않고, 가격만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새로운 기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량으로 생산해 저렴하게 갖고 오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맞지 않는 입찰기준이다. 성능발주, 지명발주 등 다양한 발주방식을 도입해 새로운 기능과 기술을 접목한 신제품들이 조달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높여갈 수 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1980년대 1차 산업재배치, 1990년대 2차 산업재배치를 거치면서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만 살아남았고, 정부가 지명발주, 성능발주 등을 도입해 강소기업들을 육성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청’ 구조까지 혁신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즉 지명발주, 성능발주를 통해 정부 사업을 수주한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대기업, 해외기업에 하청을 주는 사례가 대두되면서 ‘횡청’이 가능해진 것이다. 새 정부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재를 중소기업 위주로 전환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대기업과 대등한 관계십을 설정할 수 있다.”

-인증제도 역시 4차 산업혁명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애물 아닌가.

“우리나라의 인증체계는 포지티브 시스템이라 인증을 받지 않으면 시장에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나 융합상품의 경우 시험기준이나 인증제도가 없으면 세상에 빛을 볼 수 없다. 지난 정부에서 KMW가 ‘융합 안전모’를 개발했는데, 헬멧에는 구멍이 없어야 하고, 무게도 440g 미만이어야 한다는 기준 때문에 인증을 받는 데만 1년9개월이 걸렸다. 그것도 새 안전기준을 만들어 어렵게 획득했다. IoT 기반의 새로운 제품, 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변화를 인증제도가 담아내지 못하고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학·연·관의 협업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이제는 중소기업의 부족한 기술, 부족한 인력을 직접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온디맨드 방식(On-Demand Economy), 공유경제, 휴먼 클라우드,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전문가, 전문기업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환경변화를 인식해서 기업들도 또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화제를 바꿔 이달 10일 새로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의 과제 중에 중소기업과 관련한 중요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을 공약했다. 이 약속은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이뤄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법 개정 등 여러 현안이 있겠지만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중소벤처기업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내놔야 한다. 또 내수경기가 어려워서 새정부가 10조원 규모의 추경편성을 예고하고 있는데, 이 추경은 내수경기를 살리고 기업에 활력을 주는 쪽에 포커스를 맞췄으면 좋겠다. 재정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기업 활동을 촉진시키고, 기업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또 중소기업의 현안 중에 하나가 대기업과의 거래가 팍팍하다는 점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점차 거래조건이 팍팍해지고 단가후려치기 등 여러 문제가 많다고 한다. 대기업들이 자체적인 노력 없이 원가절감의 부담을 하청업체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페어플레이와 협력이 가능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새 정부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솔직히 지금의 권한이라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도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엄하게 처벌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하지 않았나. 불공정한 대기업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위해 이미 가진 권한이라도 제대로 행사했으면 좋겠다.”

-중소기업 정책을 연구하는 중소기업연구원장으로서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새 정부에서 약속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현 정부활동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규제, 규정 등을 정비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 중소기업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채널이 확보됐으면 좋겠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통화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등을 보면 중소기업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책결정 과정에 중소기업 의견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정책 환경을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 또 정부나 대학은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개방직 공무원, 기술직 공무원, 산학겸임교수 등을 채용할 때 중소기업 경력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문화를 없애야 실력 있는 인재가 중소기업에 몰리고, 기술발전, 인력양성, 일자리창출 등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중소기업 정책에 중소기업의 생생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중소기업을 바라는 시선, 인식, 차별적 문화를 개선해야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지 않아도 중소기업 중심의 건전한 경제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CEO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중소기업을 경영한다고 위축되지 말고 자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합법적으로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일 아닌가. 그런 어려운 일을 하는 사장님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사회와 기술의 변화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고,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이슈가 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막연한 기대감이나 공포감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수준을 고려해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실행에 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프로필

-전북대 경제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

-일본 총합연구개발기구(NIRA) 객원연구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공정경제분과 자문위원

-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중소기업전문위원장

-현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자문위원

-현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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