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잘못 모두 털고 새 기준 적용, 연구원 재건축 나설 것”
연구원 내 모든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전수조사 통해 재발방지 대책 이행
막연한 불안도 문제...소통과 투명성 강화 통해 국민의 신뢰 회복에 최역점

국내 유일의 원자력 종합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1959년 설립된 이후 반세기 동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기술고도화를 통해 국가 경제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한국표준형원전 기술 구축, 핵연료 국산화, 연구용원자로 국산화, 방사성동위원소 기술 선진화 등을 통해 국가 경쟁력 제고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최근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탈원전’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데다, 원안위 조사 결과 원자력연구원이 방사성폐기물을 무단으로 폐기해 온 것이 드러나면서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에 놓여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원자력연구원장에 선임된 하재주 원장으로부터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원자력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우선 지난 3월 16일 원자력연구원장에 임명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를 밝히신다면.

“솔직히 원장으로 취임한 기쁨보다는 어깨가 무거운 게 사실입니다. 특히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큰 상황에서 원자력연구원이 국민에게 깊은 실망과 우려를 끼쳐드려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안전 없이 연구 없고, 혁신 없이 미래 없고, 전략 없이 성과 없고, 생산성 없이 효율도 없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앞으로 안전과 소통, 연구개발, 경영 등 4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연구원의 대대적인 개혁을 펼쳐 나갈 계획이죠.”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에서 수장 자리에 올라 부담도 클 텐데 앞으로 연구원의 운영 방침을 밝히신다면. .

“원자력계가 빛만 보며 달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한 그림자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빛을 볼 때 그림자도 같이 보아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경험한 것이죠. 많은 분들이 원자력계의 위기라고 말하지만 이런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릴 것이라 예상되지만, 저는 저희 직원들의 능력과 저력을 믿습니다. 올해로 원자력연구원은 창립 5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58년 된 ‘건물’이니 ‘보수’보다는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과거의 잘못을 모두 털고 가고자 합니다. 새로운 기준(New Standard)을 적용해 연구원을 재건축 할 것입니다.”

▶수년간 규정을 어기고 방사성폐기물을 무단 폐기해 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연구원의 입장과 앞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신다면.

“지난 4월 20일 최종 발표된 원안위의 특별검사 내용을 보면 저희 연구원이 방사성폐기물 처분절차를 위반해 무단으로 폐기했고, 허가조건을 위반해 제염·용융·소각시설을 사용하는 등 중요기록을 조작하거나 누락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원안위 조사결과 환경에 대한 방사선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평가됐지만,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사전 허가받은 범위를 벗어나 연구원 내 자체 처분 또는 소각한 부분은 명백한 연구원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보다도 안전이 최우선인 연구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연구원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원안위 중간발표 직후부터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경영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재발방지 대책을 도출하고, 연구원 내 불용폐기물 관리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해 관련 절차 개선에 나서고 있죠. 또 연구원 내 모든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현장실사를 수행해 실효성 있는 관리 체계 구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소통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등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지속적으로 이행해나갈 예정입니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셨습니다. 조직개편과 인사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고, 앞으로 연구원이 가장 중점을 둘 연구 분야는 무엇인지.

“‘안전 최우선’이라는 경영 원칙 아래 재발방지와 혁신을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조직 강화와 조직 문화 혁신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이번 조직개편에도 포함된 내용으로, 안전관리의 필요성에 공감해 기존 안전관리 조직인 ‘안전방호단’을 ‘안전본부’로 격상하고, 본부급 소통전담부서(소통협력본부)를 신설하는 등 관리 및 감독과 소통 기능을 강화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또 이번 사안의 주요 원인을 폐기물 이원화 관리로 진단하고 ‘방사성폐기물통합관리센터’를 신설해 방사성폐기물 관리(분리, 저장, 처리, 처분장 인도) 책임부서를 일원화 했습니다. 아울러 원장에게 직접 익명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제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폐기물 안전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주기적 교육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최근 지진과 방사성폐기물 등 안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원자력 전문가로서 정말 원자력은 안전한 에너지인지, 그리고 국민들의 불안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자력계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원자력에 있어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원자력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인류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경제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만 하죠. 우리 원자력계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다행히 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나라들이 원자력 안전에 대한 안전기준을 크게 높이고,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를 대비한 안전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원자력계의 끊임없는 안전에 대한 노력만이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있어 과연 원자력을 포기하고, 신재생에너지나 다른 에너지로 전력공급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는 어떤지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나라는 인구는 많고 에너지 자원은 부족한 나라입니다.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 사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바람도 햇빛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신재생에너지만으로 미래 에너지를 대처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도 일정 부분 유지할 필요가있죠. 때문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국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연구원이 나서서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하재주 원장은...)

하재주 원장은 1956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원자력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사해 신형원자로개발연구소장, 연구로이용개발본부장, 원자력기초과학연구본부장, 원자력안전연구본부장 등 원자력 안전, 연구용‧신형 원자로 개발 분야에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2014년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OECD/NEA) 원자력정책개발국장에 선임돼 원자력 개발 정책과 경제성 분석 분야를 총괄했으며, 최근엔 IAEA(국제원자력 기구) 최고 자문기구인 ‘SAGNE(원자력에너지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원자력, 핵연료주기, 폐기물 기술 분야에 대한 IAEA의 활동과 지속적 에너지 개발을 위한 원자력의 역할 평가 등에 대해 자문 역할을 수행하는 등 국내를 대표하는 원자력 전문가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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