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알람소리에 눈을 뜨면 날은 하얗게 밝아 있다. 아침이 일찍 열려도 세상을 점령한 미세먼지 탓에 창문을 활짝 여는 재미가 없다. 창문을 넘어 달려드는 바람을 맘껏 폐 속으로 잡아넣던 시절의 기억이 아득하다. 새벽 산책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스크 안에 갇혀 드러나지 않는다. 파랗게 갠 하늘 아래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람들에게 내려앉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안의 세상에서 먼지는 눈에 선명하다. 인간의 눈에 존재를 드러낸 먼지는 인간의 시야에서 세상을 앗아간다. 보이지 않던 것이 실체를 드러낼 때 위협은 이미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자라 있다. 맑은 공기가 사라지자 희망도 동시에 사라진다. 희망이 사라진 희뿌연 세상에서 인류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우주로 나아간다. 현실은 영화 속 세상을 빠르게 닮아가고 있다.

그래도 5월의 세상은 여전히 싱그럽다. 장미대선이 끝난 지 일주일, 하늘빛은 푸르고 신록은 짙어만 간다. 저마다의 기치를 내걸고 선택받기를 호소했던 후보들 중에서 우리의 눈은 한 명을 골라냈다. 돌아보면 여러 번의 선거에서 우리는 눈을 감고 있었다. 후보의 삶이 아니라, 후보의 시선이 닿아 있는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감정에 표를 던졌다. 욕망과 감정에 사로잡힌 흐린 눈은 제대로 된 일꾼을 가려내지 못했고 제대로 일이 되지 않는 세상은 나날이 뿌예졌다. 불투명해진 세상에서 우리의 눈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늘어났고, 그 안에서 음습하고 음흉한 일들은 먼지처럼 쌓여갔다. 창문을 깜빡 열어두고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실내에 부옇게 깔린 먼지를 닦아내야 속 시원히 그 다음 일을 할 수 있듯, 나라 안에 켜켜이 쌓인 적폐라는 먼지 덩어리를 확인한 우리의 눈에 시급해 보인 일은 대청소였을 것이다.

집안의 먼지는 가족을 병들게 하고 나라의 먼지는 국민을 골병들게 한다. 서로의 입장이 달라도 한 가정의 가족이듯, 서로의 처지가 달라도 한 나라의 국민이다. 욕망과 감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선택한 배우자가 현명할 가능성이 높듯, 욕망과 감정이 아니라 ‘사람’으로 선택한 지도자가 공명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으로서의 우리가 욕망과 감정을 버리고 ‘사람’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떴을 것이라고 믿는다.

쌓인 먼지를 털어 없애고 닦아 없애도 먼지는 다시 쌓인다. 그것이 먼지의 생리다. 청소를 끝낸 가장 상쾌한 순간에도 먼지는 공기 중에 있다. 우리의 눈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주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나라도 대청소 한번으로 맑아질 수 없다. 먼지가 오랫동안 누적된 만큼 대청소조차 길고 더딜 것이다. 청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누군가는 밥을 짓고 빨래를 해야 하듯, 사실상 오랫동안 방치돼 위태로워진 외교와 안보와 경제 분야의 일도 동시에 챙겨야 한다. 어떤 일이든 하루아침에 눈에 띄게 달라질 수는 없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중요한 것은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하는 가다. 그 동안 우리는 공익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정권들을 보며 정치가 삶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피부로 느껴 왔다. 우리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또렷이 빛나야 한다.

아카시아 향기 아래에서 풀들은 다시 머리카락처럼 자라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사무치게 아름다운 계절이다. 미세먼지가 우리의 눈과 그 아름다움 사이에 있다. 미세먼지가 우리의 몸을 가로막아도 우리의 눈은 그 너머에 가 닿는다. 보고 싶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눈길은 거둬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대신 이곳을 가꿔 나갈 것이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사무치게 사랑스러운 이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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