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rove 편집장
김선미 rove 편집장

최근 일 때문에 ‘미생’을 다시 보았다. 다시 보아도 등장인물 중 가장 힘들어 보이는 건 역시 선 차장이다. 처음 이 작품을 볼 당시 나는 애가 없었고, 저런 현실이라면 너무나 슬프다 생각했다. 다른 주인공들은 고생한 만큼의 보람과 축하를 받지만 선 차장은 이러나 저러나 늘 죄인이고 남들 두 배로 잘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 따위의 말이나 들어야 하니까. 두 가지 일을 다 잘한다고 인정하면 자신은 그 사람 능력의 반 밖에 안 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일까. 이후, 그 입장이 비슷하게나마 되어보니 드라마는 아주 현실을 잘 반영한 것이었다.

일과 육아를 다 잘하려면 답은 하나다. 대충 평범해져야 한다. 애도 대충 그냥 그렇게 키우고 일도 대충 크게 잘하지 않는 채로 묻어가는 거다. 둘 중 하나를 되게 잘하려 들면 나머지 한 쪽을 손가락질 받게 되고, 둘 다 되게 잘하려 하면 능력에 비해 욕심 많다고 욕먹는다. 슬픈 일이다.

애엄마의 이미지는 어떨까. 애 성화에 못 이겨 세수도 못한 얼굴로 집에서 탈출하다시피 문화센터에 나온 여자를 생각하긴 어려울 것이다. 유모차 끌고 한가로이 쇼핑몰이나 돌아다니다 카페에서 끝없이 수다 떠는 여자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지. 어쩌다 이런 이미지가 박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여유 있게 살아가는 애엄마를 본 적이 없다. 실체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일을 하고 있는 애엄마의 하루는 기가 막히다.

간단히 나를 예로 들면, 대한민국 3인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작은 잡지의 편집장인 나는, 아이가 자는 밤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고 대략 5시간 뒤에 일어나 아침부터 밤까지 풀 육아를 하는 나는, 수시로 체력저하에 허덕이다 마감 후의 짜릿함에 심폐소생되고 아기 함박웃음에 긴급수혈 받는 나날을 반복한다. 싱글인 친구가 나를 보고 ‘애는 절대 안 낳아야겠다’고 하면 ‘부디 꼭!’이라 강조하면서도 때로는 이 아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가 아닌가도 싶은,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며 살아간다.

어린이집 대기는 1년째 풀리지 않는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기띠를 메고 촬영장에 나가기도 하고 아기 업고 100페이지짜리 책의 교정을 보기도 한다. 내가 아는 기자들은 촬영장 구석에서 유축도 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직업을 가진 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외롭고 고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엄마 한 사람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엄마가 그랬고 우리가 그렇다. 다만 우리들의 엄마는 티 내지 않고 묵묵히 했고, 우리들은 그 희생에 의문을 품고 항의하는 첫 번째 주자가 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나는 엄마의 당연한 희생에 반대한다. 엄마이자 여자이자 사회인인 우리들은 일도 해야겠고 애도 잘 키워야겠다. 아이에게는 물론 무한한 사랑을 주고 싶다. 내가 받던 사랑에 더해 내가 받고 싶던 사랑까지 주고 싶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커리어도 유지하고 싶다. 이 점을 원활히 해나가기 위해 남편과 사회가 배려해야 한다. 누구나 애를 낳고 무리 없이 키워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두면 모두가 배려 받는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보다 누구든 가난해지기 쉬운 것이 자본주의의 특성이므로, 빈자가 배려 받는 시스템이어야 모두가 최악의 상황에서 구제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누구나 아이였거나 아이를 가지거나 아이의 가족이 된다. 타인의 육아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배려 받을 수 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나 쓰러 돌아다니는 애엄마는 없거나 지극히 일부일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제 한 몸 바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고 있는 애엄마들을 부디,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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