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요즘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보지 못했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자주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멘토이자 친구들이다.

얼마 전 그들과 만나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멀리서 옛 친구가 왔다며 함께 기울이는 술잔의 즐거움을 논하는 이들에게서 공자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오른다.

대화가 무르익던 중에 ‘우리말’의 어원이 술안주가 됐다. 옆자리서 꺼내든 ‘잘’이라는 단어가 귓전을 때린다.

잘한다, 잘자라, 잘있느냐 등 하루에도 수없이 쓰는 말이지만 그 뜻인 무엇인지 모르는 단어였던 ‘잘’.

사전에는 ‘옳고 바르게’ ‘익숙하게’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답은 그게 아니었다.

글로 먹고 산다는 기자 체면에 욕심이 났다. 한글과 한자, 외국어까지 알고 있는 모든 조합을 고민하던 찰나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스로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

거 참 머리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다가 보니 ‘잘’이라는 한 글자가 주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입으로 수 만 번은 내 뱉었을 ‘잘’이라는 글자의 의미대로 살았나 하는 부끄러움과 답답함에 자괴감도 들었다.

기자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난 한 주 간 전통시장 안전 문제를 취재하는 동안에도 이날 술자리에서 경험했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달에 한 번 씩 같은 시간에 찾아온 화마(火魔)가 대구와 여수, 인천의 전통시장을 차례로 집어 삼키는 동안 달라진 게 없는 우리 정부의 대응에선 어느 것 하나 ‘잘’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 다른 전통시장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정부의 답변은 두 달, 넉 달 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답답하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 연락했던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통시장은) 답이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국민안전처 등이 TF를 구성,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법·제도적인 부분을 비롯해 지자체와 시장 상인 등 여러 요인들이 얽혀있어 쉽게 해법을 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자 또한 전통시장 안전사고 문제가 다루기 어려운 주제임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취재를 ‘잘’ 해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물론 화재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사람의 힘으로는 막기가 어려울뿐더러 특히 전통시장은 점포들이 줄지어 있는 특성상 그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정부가 전통시장 화재 사고 예방을 위한 좀 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진정으로 ‘잘’하고 있는지, 하다 못해 사전에 담긴 의미라도 했었는지는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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