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진 제품 일색 배전반 업계서 면진기술 개발 필요성 대두
케이블 단말부위 등 부속품 지진충격에 취약, 면진기능 요구
건물·현장 따라 내진·면진제품 함께 적용 기능성·경제성 담보해야

2016년 9월 12일 경주시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이후 대한민국은 ‘지진공포증’에 빠졌다.

규모 5.8의 지진은 1978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강의 지진 사례로 기록됐다.

이 날을 기점으로 지진은 사람들에게 가장 공포감을 주는 자연재해로 각인됐다.

경주 사태 이후 올해 1~2월에만 예년 평균(6.7회)을 크게 상회하는 30여 차례의 지진이 발생했고, 원전이 밀집한 경북 지역에 대형 지진이 집중된 것도 불안감을 키운 원인이다.

실제 기상청에 따르면 국내 10대 지진(진도 기준) 중 5위권 안에 포함된 지진의 대부분이 경북 인근에서 발생했다.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컸던 경북 경주 지진(진도 5.8)을 비롯해 경북 울진(진도 5.2), 경북 상주시 인근(충북 속리산 부근)(진도 5.2), 경북 경주(진도 5.1) 등지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났다.

원자력발전소가 경북 동해안에 밀집해 있고, 특히 월성과 고리 원전 30km 반경 내에 46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지진 공포감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지진 공포와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감은 다양한 행위들을 야기했다.

우선 정부는 부랴부랴 대대적인 내진보강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안전처는 건축물, 도로, 학교 등 공공시설물에 대한 내진보강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28개 중앙부처와 17개 지방자치단체에 8393억원을 투입해 2542곳에 대한 내진보강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최근 5년 간 실적과 비교해 내진보강사업 현장 수는 전년 목표 대비 2.9배, 최근 5년 평균 대비 2배 증가했다. 투자예산도 전년 목표 대비 6배, 최근 5년 평균 대비 6.7배 늘어났다.

정부는 보강사업이 완료되면 항만시설은 4.88%, 철도시설은 4.63%, 전력시설은 4.12% 정도 내진율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한국표준협회에서는 내진·제진기술의 표준화에도 나섰다. 표준협회는 지난해 10월 한국면진제진협회와 내진기술 표준화 등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지진 피해 예방을 위한 내진정책이 봇물을 이루면서 관심을 끄는 게 바로 내진배전반이다.

배전반은 지진, 화재, 자연재해 등이 발생할 경우 사고복구, 대피로 확보 등에 필요한 전원공급의 필수설비다. 이 설비에 내진기능을 부가해 지진 등이 발생해도 전력사용에 문제가 없도록 하자는 게 내진배전반의 등장 배경이다.

▲내진배전반 늘수록 면진기능 필요성 목소리 높아져=지난 2011년 일렉콤이 업계 최초로 내진기능을 가진 수배전반으로 우수조달물품 지정을 받은 이후 내진배전반은 기존의 일체형 배전반을 잇는 새로운 업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주요 발주처에서도 내진배전반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결과 현재는 공공조달시장을 겨냥해 내진배전반으로 성능인증이나 우수조달물품 인증을 받은 기업만 약 30개사에 달한다. 또 배전반에 내진기능을 부가하면서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하려는 업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내진배전반 보급이 확대되면서 업계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있다.

과연 배전반에 적용하는 지진방지기술로 ‘내진(耐震)’ 기능이 최선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오히려 내진보다는 면진(免震) 기술을 배전반에 접목하는 게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뒤늦게 내진배전반 개발에 뛰어든 기업뿐만 아니라 현재 내진기능을 보유한 배전반으로 우수조달제품 인증을 획득한 업체조차도 이런 목소리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수요처에서도 ‘과연 배전반에만 내진을 적용하는 게 의미가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다”면서 “또 내진배전반 테스트를 할 때는 단독면으로 하지만 현장에 설치할 때는 여러 배전반을 열반(列盤)한다. 이런 환경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내진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진(耐震) 일색에서 벗어나 면진(免震) 배전반 개발에도 관심 쏟아야=건물이나 구조물에 대한 지진방지기술은 ‘내진(耐震)’, ‘면진(免震)’, ‘제진(制震)’ 등으로 구분된다.

내진은 지진력을 구조물의 내력으로 감당하는 개념이고, 면진은 구조물에 전달되는 지진력을 줄이는데 목적이 있다. 제진은 구조물의 내부나 외부에 지진력의 진동에 대응할 수 있는 제어력을 가해 피해를 억제하는 기술이다.

배전반 업계에서는 지진 등 외부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내진 개념을 우선 도입했다.

스프링, 베어링 등으로 외함에 전해지는 지진 충격이나 진동을 흡수해 설비를 보호하는 방식과 배전반을 구성하는 함체구조에 견고한 지지대를 붙여 지진에 견디는 방법 등이 내진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진도 6~8대의 강진이 발생할 경우 내진배전반이 제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적용된 기술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견해와 내진기술이 반영되지 않은 케이블 단말부위 등이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진이 발생하면 배전반 외함은 견디겠지만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부속은 견디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부속 각각에 내진기능을 넣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것은 쉽지 않은 얘기”라고 지적했다.

면진기능이 접목된 배전반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면진기술을 통해 지진발생 시 배전반 외함으로 전달되는 진동 자체를 차단하면 함뿐만 아니라 부속 등이 지진력에 손상되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일반 면진기술로는 기둥·기초 연결부에 설치한 고무댐퍼로 구조물에 전해지는 진동을 줄이는 방식, 구조물 하부와 지반 사이에 두 개의 테이블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레일을 넣어 진동에 대응하는 면진 테이블 방식,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볼을 이용한 볼 베이링 방식 등이 있다.

배전반 업계에선 최근 내진배전반과 함께 면진기능을 갖춘 제품도 개발해 주변환경, 규모, 건물용도에 맞게 각각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력발전소는 이미 예전부터 면진구조를 도입했다”면서 “중요시설에는 면진배전반을, 일반건축물이나 옥외, 옥상 등에는 내진배전반을 각각 적용해 기능성과 경제성을 담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내진보강은 이제 개인이나 건물주의 관심사가 아닌 국가적인 아젠다가 됐다”면서 “시방부터 바꿔서 전기설비가 설치되는 구역은 처음부터 내진기초를 하도록 유도하고, 기업들이 내진이든, 면진이든 지진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정부나 수요처에서 가치를 인정해주고 혜택을 줘야 관련 분야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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