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로브 편집장
김선미 로브 편집장

친구들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방문한다. 나는 그 날 밤 몸살이 난다.

아이들은 굳게 닫아둔 안방 문을 손쉽게 열고 우다다 침대 위로 올라간다. 먼지 묻은 발로 침구 위를 방방 뛰다 뛰어내려와 화분에 흙을 들쑤신다. 그 손으로 오디오를 만진다. 잠시 후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오줌을 싸고 대충 손에 물을 묻히고 바지에 슥슥 닦는다. 그 손으로 과자를 먹는다. 과자 부스러기를 배에 슥슥 닦고 러그 위에 엎드려 리모컨으로 티비를 켠다.... 이 모든 걸 다 하는 데 20분도 안 걸린다.

친구들은 “적응해야지. 너도 애 낳으면 매일 이렇게 살아야 돼” 다독인다.

꼬맹이들이 집에 간 뒤에 나는 침구를 갈고 러그를 소독하고 각종 전자기기를 닦는다. 3시간 동안 미친 사람처럼 청소를 한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미칠 것 같다. 내 둥지가 바스라진 것 같다. 익숙해지라고? 미안해 친구들아. 너희 다신 안부를 거야.

어떤 돌팔이 의사가 어설픈 충격요법으로 결벽증을 치료할 때 꼭 이런 짓을 할 것 같다. 환자의 상태는 최악이 될 것 같고, 그게 바로 나였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더럽고 어질러진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박하게 결벽증을 갖고 있었다. 허지웅이나 서장훈 같은 사람들에게 결벽남이라고 놀리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게 지극히 일반적인 거 아닌가. 늘 손에 머리카락용 돌돌이가 들려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느라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비하면서도 도저히 그만두지 못하는 게 일상 아닌가.

그런 내가 1년 전 엄마가 되었다.

신생아를 세균에 노출시킬 순 없어. 집을 무균 상태로 만들자.

하루 2시간 자면서도 아기 옷과 침구는 물론, 내 옷까지 매일 삶았다. 밥 먹을 시간도 없는데 수시로 양치를 했다. 남편이 와야 그나마 세수라도 할 수 있다는, 여자 인생 최대 고난의 시기에 잠 잘 시간 쪼개 아침저녁 목욕을 하고 집 청소를 했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가시고 나면 설거지 하고 말리지도 않고 수납장에 넣어두신 냄비를 꺼내 다시 닦았다. 피곤해 죽을 것 같지만 지저분한 집에서 사는 것도 죽을 것 같긴 마찬가지. 이런 게 깔끔 떠는 인간들의 숙명이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그나마 깔끔하게 죽는 거다. 오죽하면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어? 도와주려고 왔는데 할 일이 없네’ 했고, 나는 ‘제발 잠 좀 재워주세요’ 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다.

막 걷기 시작한 아기가 지나는 발걸음마다 상상해본 적 없는 어지러움이 피어난다. 딱 1분 20초 정도면, 일생에 청소라는 걸 당해본 적 없는 집처럼 초토화됐다. 과장일까? 며칠 전 아침, 전날 말끔히 치워둔 거실에 이제 막 일어난 아기가 한 바퀴 기어 다닌 후, 남동생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왔다. 그 날 볼일을 마치고 돌아간 동생은 조심스레 이런 문자를 보냈다.

“누나... 인간극장 찍고 있는 줄.”

그 문자를 보고 한참 웃었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온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다. 조금만 지저분한 공간에 있으면 그토록 마음이 불편하고 내 할 일을 하지 못한 죄책감 같은 것에 시달렸는데, 지금은 장난감과 살림살이가 거실 바닥에 마음껏 널브러진 상태에서 깜빡 쪽잠도 잘 수 있다.

그렇게 여자는 변해간다. 엄마라서 변한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크게 변해간다. 그리고 그 변화가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이전보다 덜 뾰족할 테니까.

그리하여 현재의 나는 심플리스트다. 쉽게 말해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

청소? 어질러질 땐 마음 수양을 하고, 애가 자면 한 번에 몰아서 한다.

인생? 일단 현재 잘 생존하고 있고 웃고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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