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 전 한수원 사장, 원자력계 조찬강연회서 “소모적 논쟁 불필요” 강조

조석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최근 원자력계와 신재생업계간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에너지정책의 세계적인 트렌드는 환경과 안전규제 강화”라며 “원자력과 신재생 모두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가치가 큰 만큼 둘 중 어느 하나만 하자는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 사장은 17일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주최로 열린 제190차 원자력계 조찬강연회에서 “에너지패러다임의 변화로 원전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 “하지만 원전 정책은 이념논리에 빠져서는 안 되고, 국가별 여건과 상황에 맞게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사장은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독일 등 5개 국가들의 에너지정책 변화를 소개하며, “독일은 원전 폐쇄, 프랑스는 원전 축소, 일본은 재가동 후 축소 등의 방침을 정한 반면, 미국은 신규 원전 소폭 건설 추진, 중국은 원전 확대 정책을 수립하는 등 국가별로 원전 정책에 대한 스펙트럼은 다양하다”며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국민적 수용성, 전력계통 여건, 에너지 자원보유 상황 등을 고려해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원자력 아니면 안 된다는 낡은 사고 버려야’

조 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지난 3년간 한수원 사장을 역임하며 느낀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그는 “원전비리 사태가 터진 직후 취임해서 퇴임 시점에는 경주지진까지 발생해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며 “하지만 원자력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 잘못된 선동이라고 몰아붙이거나 안이하게 대응해서는 절대 곤란하다”고 역설했다.

조 사장은 “일부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2008년 광우병 사태처럼 정치권에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있는데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원자력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싸니까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이제 끝나간다. 전 세계적으로도 안전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인 만큼 어떻게 하면 원전의 안전성을 확보할 것인가 연구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국회에서 원자력 안전에 관한 입법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무조건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입법을 막겠다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입법의 논리는 무엇이고,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전 지속 위해선 사용후 핵연료 문제 해결해야’

조 사장은 원전정책을 지속하려면 유연한 자세와 함께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원자력계에서는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서는 원전이 지속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반대로 전력수급이 안정적이라면 더 이상 원전이 필요 없다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며 “현재 운전 중인 원전 중 10여기가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완료되는데 이를 모두 없애자는 주장도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모든 원전의 수명연장을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 사장은 또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선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며 “정부가 명확한 방침을 마련하고, 원자력계는 이러한 방침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와 ICT 융합 위해선 새로운 방식의 전력산업구조개편 필요’

조 사장은 “앞으로 에너지산업이 발전하려면 ICT와의 융합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방식의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사장은 “우리나라가 ICT 분야의 강국이라고 하지만, 한전의 스마트계량기 하나만 바꾸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보면 에너지 분야에서만큼은 ICT 융합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라며 “발전회사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어지는 프로슈머가 확대되고, 다양한 가격구조가 가능해지려면 ICT 융합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전사고에서도 보듯이 소매가격을 규제한 상태에서 발전부문만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실패한 사례가 많다”며 “옛날 방식의 전력산업구조개편보다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와 관련 정부의 방침이 아직 정해진 바가 없지만, 일본 사례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ICT융합을 제대로 도입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전력산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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