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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외할머니와 호모헌드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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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현 건설시공팀장
외할머니는 솜씨가 무척 좋은 분이셨다. 특히 뜨개질 솜씨가 상당하셨다. 겨울방학이면 나와 동생을 비롯한 손자, 손녀들에게 손수 뜨신 스웨터를 선물하셨는데 당시 유행했던 브○○, 김○○ 등 아동복 브랜드와 견주어도 색감이며 디자인이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언젠가는 분홍색 스웨터를 보내주셨는데 앞판에 육각형의 벌집모양이 덧대져 참 고급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새 옷은 당연히 월요일에 입어야 제 맛이다. 월요일을 기다려 학교에 입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친구가 “그 옷 어디서 샀어?”라며 조용히 물어왔다. 난 한껏 우쭐해져 “어, 외할머니가 보내주셨어.”라고 대답했다.
외할머니는 깔끔한 분이셨다. 외갓집에 놀러 가면 물걸레를 들고 나와 동생의 동선을 따라다니실 정도셨다. 그런 성격은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동반하게 돼 있다. 과자부스러기 떨어뜨렸다고 잔소리도 많이 들었었는데.
외할머니가 지난 주말 눈을 감으셨다.
우리에게 스웨터를 많이 짜주셔서 그런지, 아님 늘 쓸고 닦느라 고생을 하셔선지 나이가 드셔서는 극심한 관절염에 시달리셨다. 그래 설까. “아이고 죽겠다.”라는 말을 자주하셨다.
지척에 계셨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일 년에 두세 번 찾아뵙는데 그쳤다. 취재하느라 경기도 안양의 할머니 집을 자주 지나쳤지만 그 때마다 마음에 걸려 전화 한 통 드린 게 고작이다.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약 10개월 전 병원으로 모셨는데 지금껏 두 번밖에는 찾아뵙지 못했다. 이 모든 걸 후회해 봤자다. 내게 크고 작은 추억을 남겨주신 그녀는 이제 이곳에 없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자식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부재는 상당한 고통과 상실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 70세 가까운 나의 어머니는 통곡하셨다. 발인을 마치고 화장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머니의 눈빛은 갈 길을 잃었다.
모든 죽음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진다.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갈 것은 왜 이리 아등바등 살며, 누군가를 끊임없이 시기하고 미워하는지 깊은 분석을 하게 된다. 뭣이 중한디. 이 말이 곱씹어지는 순간이다.
문득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갱의 작품이 떠오른다. 이 그림 가장 오른쪽에는 누워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과일을 따는 젊은이, 맨 왼쪽에는 무언가에 괴로워하는 늙은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인간의 탄생, 삶, 죽음이라는 3단계를 표현하고 있다. 고갱은 악화된 건강과 생활고, 딸의 죽음 등으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결국 자살을 결심하고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그 또한 죽음 앞에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받아들이며 이 그림을 그린 게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유독 ‘호모’를 접두어처럼 사용한 단어가 많이 눈에 띤다. 우리가 흔히 아는 호모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사람)나 호모 루덴스(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외에도 다양한 단어들이 양산되고 있다. 호모 자취엔스(자취하는 사람), 호모 불만피엔스(불만 많은 사람), 호모 북커스(책 읽는 사람), 호모 체어쿠스(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호모 헌드레드는 100세가 보편화된 시대의 인간을 지칭한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는 6개국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31개국에 달할 전망이다. 외할머니가 90세에 돌아가셨으니 내 자식들은 100세를 훌쩍 넘어서까지 사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인생을 긴 호흡에서 좀 더 여유롭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생각의 종착점은 내 인생을 잘 가꿔야겠다는데 멈췄으니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러나 나는 안다. 외할머니는 “아냐. 잘했다 잘했어.”라고 하셨을 것을.
가슴 깊이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작성 : 2017년 03월 16일(목) 11:14
게시 : 2017년 03월 17일(금) 13:47


진시현 기자 jinsh@electimes.com        진시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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