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 시장 경직성 여전, 배출권 남아도 거래 안해
내년부터 유상할당 등 할당방식에 변화...대비 필요

해외 배출권 거래제 운영 현황(자료출처=한국에너지공단)
해외 배출권 거래제 운영 현황(자료출처=한국에너지공단)

배출권거래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기업은 정부로부터 배출권을 할당받아 할당된 배출권 범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거나 시장에서 배출권을 추가로 구입할 수 있다.

올해는 1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이 종료되는 해다. 지난 1월 정부는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제2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2차 기본계획은 ▲산업혁신 및 친환경 투자 촉진 ▲비용 효과적이고 유연한 온실가스 감축 ▲파리협정에 따른 국제 탄소시장 변화에 사전 대비 등 3대 운영 방향을 골자로 추진된다.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오는 6월까지 2차 계획기간 중 배출권 할당계획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에 업계의 관심도 높다. 특히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변경, 2030년 온실가스 감축 기본 로드맵 수립 등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권 관련해 굵직굵직한 변화가 있었고, 1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당시 불거졌던 형평성 논란이나 거래시장 활성화 문제 등에 개선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배출권 남아도 매도 안해…모자란 기업만 아우성

온실가스 배출권 제출이 예정된 6월이 다가올수록 배출권이 모자라는 기업들의 아우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는 넘치면서 t당 8000원을 넘지 못했던 배출권 가격은 지난달 초 한때 2만6500원까지 치솟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배출권 거래시장은 여전히 경직돼 있다. 2015년 약 5억4300만t이 할당됐지만 거래량은 124만2097t에 그쳤고, 지난해 거래량은 510만7657t으로 4배 이상 늘긴했지만 기업에 할당된 배출권 할당량은 5억3000만t 수준이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배출권 거래시장의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모자란 배출권을 사야하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남는 배출권을 팔지 않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올해 6월 새로 수립될 배출권 할당계획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괜히 남는 배출권을 팔았다가 1차 계획에서 과도한 할당을 받았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는 논리다. 배출권은 곧 생산량과 연결되기 때문에 사업 확장 등을 이유로 배출권을 아껴두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배출권이 다음 연도로 이월은 되지만, 다음 배출권을 차입할 수 없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기업은 괜히 배출권을 거래했다 부도덕한 기업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내비친다. 애초에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받았기 때문에 이를 돈을 받고 되팔 경우 도덕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모자라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채우지 못하면 과징금을 3배 물어야 하기 때문에 업계의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배출권 가격이 3만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4월 상쇄제도를 도입해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할당배출권 외 상쇄배출권의 거래를 인정하는 등 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아쉬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이 불확실성으로 인해 배출권이 남는 경우에도 매도하지 않고 비축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 2015년에도 시장 전체로는 600만t의 배출권 여유가 있었지만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업이 매도를 자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주기적인 배출권 경매를 통해 기업간 매매 외 방법으로도 배출권을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외부 감축사업 인정 유형 확대, 절차 간소화, 시장 조성자 제도 도입 등을 검토 중”이라며 “배출권 수급, 거래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 등을 시장상황을 관찰하며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방식 달라지나

지난 2015년 온실가스 배출권 제도가 최초 도입될 당시 배출권 할당은 업종별로 이뤄졌다. 국가 BAU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업종별, 업체별로 배출권을 할당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을 따르게 되면 특정 업종 특정 업체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석유화학, 비철금속 업체의 경우 초기에 할당이 너무 적게 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또 과거 배출실적을 기준으로 배출권을 할당하는 그랜드파더링(Grandfathering) 방식은 온실가스를 많이 감축한 기업일수록 배출권 할당 시 불이익을 받게 돼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했다. 온실가스 감축 취지와 제도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과거 배출실적을 기준으로 배출권을 할당할 때도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가산해 감축노력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설비효율이 높은 기업에 유리한 벤치마크(Benchmark) 할당방식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정유, 항공, 시멘트 등 3개 업종에 적용되는 벤치마크 제도를 통해 효율이 좋은 기업이 배출권을 더 가져가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운영하는 해외 대부분의 국가도 형평성 제고를 목적으로 벤치마크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설비의 신·증설 수요와 배출량을 사전에 예상해 배출권을 할당하면서 해당 시설의 정확한 배출량을 반영하기 어려웠던 점도 개선한다. 시설의 신·증설 후 실제 배출량을 정확히 확인하고 배출권을 할당해 기업의 성장을 제대로 반영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배출권의 유상할당도 시작된다.

정부는 무역집약도 30% 미만, 생산비용발생도 30% 미만 업종에 해당하는 할당대상업체에 대해 배출권을 3% 무상할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머지 기업은 종전대로 배출권이 무상 지급된다. 여기에 대해서도 업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데이터를 토대로 무역집약도, 생산비용발생도를 가늠하는지에 따라 배출권 유무상 할당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업종별로 배출권의 유무상 할당여부를 결정하면 수출집약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통계치가 가지각색이라 취사 선택하는 데이터에 따라 특정 업종의 피해가 있을 수 있다”며 “배출권 유무상할당 여부를 결정할 때 어떤 기준의 데이터를 활용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는 어떻게 운영하나

해외의 경우 EU를 시작으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국가와 지역이 확대되는 추세다. 현재 총 39개 국가에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중이다.

EU는 지난 2005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처음 도입한 이래 3기째 제도를 운영 중이다. 비회원국 포함 31개국의 전력, 항공, 산업부문 등 약 1만2000개 시설에 배출권거래제가 적용되고 있다. 배출권 할당은 유상할당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발전부문은 100%, 기타 산업은 20%가 유상할당 적용을 받는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EU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운영에 잔뼈가 굵다. 시장 침체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EU는 운영기간을 5년에서 8년으로 확대하고 유상할당 경매시기를 2019년 이후로 연기하는 등 새로운 방식 하에서 3기를 운영 중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은 지역단위로 배출권거래제를 운영중이다. 중국은 시범기간을 거쳐 올해 중으로 전국단위로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한·중·일 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근호 한국에너지공단 배출권운영팀장은 “한국, 중국, 일본 간 기후변화 협의체 조성이나 기술 공유를 통해 기업 간 사업교류를 활성화하거나 정보교류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 자명한 만큼 협력을 통해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세 도입, 배출권거래제 대안 될까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실질적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탄소세는 개인이나 기업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배출한 탄소량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세금이 부과되지만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의 경우 세금 부담이 크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과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 개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화석연료 등에 대한 세금부과는 제철, 수송, 발전 등 산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기 생산비용을 증가시켜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대 국회에서 기후변화 요인을 줄이는 완화정책과 기후변화 영향을 줄이는 적응정책의 일환으로 탄소세 도입이 적극 논의됐지만 배출권거래제와 이중부담 문제, 에너지세제 개편 등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도입이 무산된 바 있다.

해외의 경우 1990년 핀란드, 폴란드를 시작으로, 총 42개 국가에서 탄소세를 시행 중이다. 총 42개 국가 중 22개 국가가 최근 5년간 탄소세를 도입했다. 탄소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다수 북유럽 국가는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를 병행하고 있다. 탄소세로 거둬들인 재원은 타 세금의 완화나 에너지 절약을 위한 금융지원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세 가격은 t당 적게는 1달러 수준에서 많게는 130달러까지 제각각이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탄소세 적용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 도입 계획은 없다”며 “국내 적용시 탄소세 적용 대상, 적절한 세율, 세수 활용 방안 등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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