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강화 공감 하지만 공공기관 지정・기존 인력 흡수엔 부정적
先 개정안 통과, 後 여야간 합의 통해 논란된 부분 수정 바람직

○…“내 아이를 내 손으로 4개월 동안 서서히 죽였어요. 2살짜리 아이가 인공호흡기를 낀 채 할 수 있는 건 몸을 배배 꼬는 것뿐이었죠. 피해자들은 가족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런 대참사를 계기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고(故) 최모양의 어머니-

“다른 부모들은 우리가 겪은 끔찍한 사고를 경험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사랑스러운 자녀를 잃은 아픔을 되돌릴 수 없다.”

-이케아 서랍장 사고로 자녀를 잃은 미네소타의 자넷 맥기씨-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이케아 서랍장 사고 등으로 제품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후 사후 조치 차원에서 생활제품과 전기전자제품의 안전 보장을 담은 제품안전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여야 간의 이견으로 1년이 다 돼가도록 상임위원회 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제품안전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관련법은 상임위의 벽을 넘지 못하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협회 인력의 고용 승계 ‘쟁점’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품안전기본법 개정안 4건은 현재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심사단계에 묶여있다.

법안 발의 주체인 정부는 지난해 6월 한국제품안전협회를 ‘민법’에 따라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국가기관으로 독립된 한국제품안전관리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대변 단체인 협회가 시장 감시 책임을 갖고 있어 이를 국가 주도로 이관해 업무 공정성과 책임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여야의 미묘한 공적 다툼으로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안전을 강화한다는 법안의 기본 성격에는 여야 모두가 동의하지만 일부 사안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반복되면서 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며 “특히 제품안전관리원이 설립 이후 공공기관으로 지정되고 기존 인력을 흡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 상임위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국회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은 제품안전관리협회 인력의 고용승계 여부다. 제품안전관리원 설립 단계 중 업계 이해관계자를 고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공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게 법안을 반대하는 쪽의 입장이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업부가 제품안전과 관련해 현장단속 업무를 공정하게 진행하겠다는 목적에서 법정특수법인을 설립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존 업계 이해관계자들과 업무를 함께한 임직원의 고용을 승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제품안전관리원 설립 초기 단계에서부터 관련 내용을 재검토하고 안전 업무를 타 기관에 이관하는 등 다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간 정치 결과물 ‘쟁탈전(?)’

일각에서는 여야가 제품안전기본법의 긍정적 영향을 인지하고 공적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기싸움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법안의 취지와 효과를 생각했을 때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정치적 결과물을 상대 진영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는 것.

그동안의 개정 사항을 살펴봤을 때 실질적으로 문제를 삼을만한 내용까지는 아니라는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0월 김경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16명은 사업자가 제품수거 명령을 어길 시 처벌하는 내용 중 벌금 액수, 11월 김규환 의원(새누리당) 등 10명은 제품안전정책위원회의 소속과 성격, 12월 김수민 의원(국민의당) 등 10명은 제품안전기본법 현행 용어를 담은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하지만 이 내용은 법안 통과 이후 합의를 통해 수정할 수 있는 세부 사항으로, 여야 간 셈이 맞지 않아 불발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상임위에서도 제품안전 강화라는 큰 틀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일부 항목에서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치권 이슈로 국정이 마비된 상태라 제품안전기본법이 통과되려면 시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제품안전관리원을 예산 계획 없이 기관부터 설립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인력 충원과 사후 관리 등 여러 부분에서 허점이 발생해 설득력을 잃었다는 의견도 있다. 예산을 일부 확보한 뒤 설립 계획을 마련했다면 고용 승계 문제에 관한 정치권 공세에도 유연하게 대처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산업부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 이후 법안의 추진 동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세부 사항을 보완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내부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법안의 발의 목적과 설득 근거가 탄탄하게 뒷받침됐다면 정치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통과됐을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 강화에 기반을 둔 법인만큼 시간을 두고 미흡한 부분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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