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호 서울공대 객원교수
박규호 서울공대 객원교수

정책(Policy)의 사전적 의미는 '의사결정의 기본이 되는 아이디어나 계획의 세트'라고 콜린스 영영사전은 규정하고 있다. 근본은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의 문제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여러 대안(alternative)들을 비교·분석·검토하여 문제해결(problem solving)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여기서 얼마나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느냐가 한 나라의 민주주의 척도가 됨은 나의 저서인 '소담한 생각밥상'이나 여러 강연에서 강조하여 왔다.

실무자의 검토의견이 얼마나 잘 하의상달 되어 결정되느냐를 보면 된다. 윗선의 지시나 리더의 일방적 의사결정이 가져오는 폐해사례를 우리는 잘 목도하고 있다. 단적으로 젊은 지도자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북한의 의사결정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정부는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면서 국가경제의 주체인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가계의 살림을 이끌어 가도록 국민으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존재이다. 가끔 대리인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정부정책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괴물이 되곤 하여 국민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례가 국내․외를 불문하고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중국에서 자주 듣는 말이 上有政策 下有對策(상부의 정책이 있으면, 하부에는 대책이 있다.) 즉,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행과정에서는 편법과 요령을 통해 피해 나가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음을 빗대어 한 말이다.

지금은 연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모 그룹 회장이 했다는 어느 인터뷰 기사도 새롭다. 일본식 경영이 몸에 밴 그 분이 우리나라 진출초기 사업추진 상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라고 생각 되는 "한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뭘 좀 하려 하면 규정을 내 밀고 안 된다고 하는데, 나중에 여러 루트를 통하니 되더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같지만, 얼마나 바뀌었는지 自問해 봐야 하지 않을까?

바야흐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일회 충전 주행거리 300km를 넘는 제2세대 신차의 등장과 자율주행차 등 전기차 관련 뉴스가 없는 날이 드문 것을 보면 자명해 진다.

그에 따른 정부의 정책도 각종 연구와 전기차 선진국의 사례 벤치마킹 등을 통해 좋아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초기의 보조금을 통한 시혜적 지원에서 선진국처럼 이용자 편익을 높여 사용자의 자부심과 만족도를 높여 주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여기에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의 EV의 방향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전환과 현재 추진 중인 노력이 가시화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소형차에서 중·대형차와 SUV가 보급되고 제3세대인 주행거리 500km이상의 차량이 나오면 시쳇말로 게임은 끝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기존 내연차량 메이커와 3만여 개의 부품업체, 거대 정유회사 1만2000여 개의 주유소 그리고 약 20조원에 달하는 유류세 등 고려할 요소는 아주 많다.

하지만, 우리만 현재를 고수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테슬라를 필두로 한 미국과 비야디를 앞세운 중국 그리고 자동차 강국인 독일이 디젤의 오명을 벗고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홈 충전기 구축과 관련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지난 2015년에는 보조금 600만원에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보급을 추진하여 충전기 구축 진도가 더뎠다. 2016년에는 보조금을 400만 원으로 줄였으나 자동차 메이커와 충전사업자가 협력하여 사업을 잘 이끌어 왔다. 하지만, 금년에는 다시 환경부가 보조금을 300만원으로 낮추면서 산하 환경공단이 중심이 되어 사업자선정을 하느라 법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을 오래 끌 뿐 아니라, 대기업들이 중기분야라고 할 정부보조금에 눈독을 들이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왜 잘 추진되던 사업방향을 매년 바꾸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물론 정책부서에서 공무원들이 머리를 쓰고 나름대로 의견수렴도 해서 만든 정책이겠지만, 얼마나 널리 아이디어를 모으고 현장을 다녀 결정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정말 전기차를 타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리며, 일상에서 사용해 보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인지 걱정이다. 시간과 인력도 없고 예산 등의 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근본을 흔들지 말고, 기존의 정책을 보완해 가면 되지 않을는지.

한국전력,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성공적인 공항건설과 여수 엑스포조직위원장으로 엑스포를 훌륭하게 연출하셨던 존경하는 롤 모델이신 강동석 전 장관님의 말씀이 새롭다. "나도 오래 공직에 있었지만, 공무원들은 자기 벤또(도시락의 일본어)만들 생각만 한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하기관을 만들고 인력을 늘리고, 종국에는 한자리 차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래 전의 말씀이니 현재 상황과는 동떨어진 일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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