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산업연구원 안준호 선임연구원
한국전기산업연구원 안준호 선임연구원

최근 기술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AI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다가오면서 전기산업에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전기산업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면서 산업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프라산업으로 인식되었고, 경제발전의 든든한 뒷배였다. 하지만 전력인프라의 구축이 거의 완료된 지금, 산업의 성장은 주춤해지면서 대한민국도, 전기산업도 함께 침체기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산업의 역할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장시장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먼저 국제적으로 파리협약을 통해 세계 많은 국가들이 탄소감축을 위해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계획하고 있으며, 작년에만 해도 이집트와 인도 등에서 수조 원 규모의 태양광 관련 발주가 나오고, 2017년에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저개발국의 전력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MDB(다자간 개발은행)의 지원도 크게 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4년도 정부의 전력정책이 공급 중심에서 수요관리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다. 수요관리가 중심이 되려면, 신규 발전소 건설보다는 기존 전력수요를 잘 관리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며,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서 탄소저감 및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고려될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정부에서는 수요관리를 위해 소비자간 전력거래와 소규모 분산전원의 확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전력시장을 정리하면, 전력인프라 시장에서 전력서비스 시장으로의 진화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전기산업은 전력인프라를 구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서비스 시장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력인프라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ICT 기술이 접목되고, 사용자의 소비패턴을 분석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AI 기능이 부가될 것이다. 또한 사용자의 다양한 수요요구에 따라 제품을 구성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가 확대될 것이다. 특히 전력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에 맞는 적정에너지기술을 활용한 제품개발도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의 경우, 유선전화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선이동통신 서비스로 바로 이행하는 것처럼 전력 역시 인프라 구축에 그치지 않고, 바로 전력서비스까지 책임지는 형태로 접근하고 있다. 또 전력 뿐만 아니라, 지역 특성에 따라 식수가 부족한 경우에는 전력과 식수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여 시장진출할 수도 있고, 지진이나 재해가 잦은 지역에는 이동형 전력공급 차량을 개발하여 수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장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아직까지 선진국의 시장지배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 시장 자체가 작고, 다양한 요구에 맞는 제품개발에 어려움이 있어서다.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서 의미 있는 회의가 지난 1월 10~11일 양일 간 폴란드에서 열렸다. 저압 전기설비 분야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국제표준을 제안하여 통과된 “저압 프로슈머 전기설비의 운영”에 대한 표준개발 회의였는데, 그동안 약세였던 한국의 국제표준 위상을 비추어 보아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프로슈머 시장에서 전력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