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산업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각 산업의 주도권은 한 나라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 산업의 경우 독일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일본으로의 산업 주도권 이동이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휴대폰 산업에서도 미국의 모토로라가 아날로그 방식 휴대폰을 발명한 이후, 핀란드의 노키아로 그 주도권이 이동하였다가, 한국의 삼성을 거쳐 이제는 중국으로 이동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주도권 이동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들 중 산업혁신시스템 개념에서는 그 원인적 요소를 4가지 정도로 보고 있는데, 기술 패러다임, 수요조건 및 시장체제, 기업과 정부와 같은 경제주체들의 역할, 각종 규제와 제도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공진화하게 된다.

요즘 자주 듣는 단어가 빅데이터와 4차 산업혁명인 만큼, 그 영향력이나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모르지만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또한, 영국의 EU 탈퇴 선언 및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선언 등 기존 시장체제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통상정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혁신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변화는 산업 주도권이 이동할 수 있는 충분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전기산업 분야도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대하여 예외일 수 없다. 전기를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이용하는 기술이 발명된 이후, 지금까지는 유럽 및 미국 등 서양을 중심으로 기술적인 진보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현재, 그 주도권이 흔들리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중국의 기술경쟁력 확보 기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최근 5년 동안 한국전기연구원을 이용한 중국제작사의 시험 현황을 살펴보면, 건수가 7배 정도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 품목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한국전기산업진흥회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송배전용 기기, 산업용 기기, 전기부품 등의 수출이 전년대비 3.6%에서 7.5%까지 감소하였는데, 특히 수출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감소율은 15.2%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중국이 자체적인 기술력 수준을 높여감에 따라, 타격을 입게 되는 우리나라 전기산업의 구조상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몇 년 전, 영국에 있는 몇몇 주요 대학의 전기공학과들을 방문하였을 때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들 중 하나는 어느 전기공학과 건물에서나 중국 유학생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 빈자리들을 해외 유학생, 특히 많은 중국인들이 채우고 있었다. 학과장 및 학장과의 회의 가운데 추가적으로 알게 된 것은 그들의 졸업 후 행보였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학자들의 두뇌유출 현상을 막고 국가적인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자 시행하였던 정책들과 유사하게 중국에서도 상당한 대우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안하고 있어서, 학위를 마친 많은 학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해외에서 유학하며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은 중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발전시켜 나갈 10년 후 전기산업 수준을 상상해 볼 때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인 수준까지도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차원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전기산업이 중국의 추격 및 추월로 인하여 이대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하는 차별화 전략과 함께 인재양성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정부가 모두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다.

한국전기연구원 손성호 팀장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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