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한서  MBC Producer
손한서 MBC Producer

어쩌다 보니, 라디오 피디로 입사하고 나서는 밤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연출하는데 절반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 10시가 아닌 6시 이후로 따져보면 그 이상이 된다. 지상파 방송국의 피디 역시 직장인이기에 지금까지 배치를 그렇게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그건 내가 밤 프로그램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나, 아님 다른 곳보다 여기에서 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와 ‘신동의 심심타파’를 합쳐 4년 정도, 얼마 전까진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를 1년 반 정도 연출했고, 이번엔 ‘강타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맡게 됐다.

데일리 프로그램을 생방송 위주로 제작하는 라디오 피디들은 본인이 만드는 프로그램 시간에 따라 생활 패턴이 계속 바뀌게 된다. 밤 프로그램을 하면, 동네주민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라는 시선을 보낼 정도로 밤낮이 주로 바뀌어버린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바람에 나에게도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는데,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

먼저 나쁜 점부터 보자. 밤에 일이 끝나고 나면, 사실 잠을 바로 청하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몇 시간동안 인터넷을 뒤적거리거나, 영화도 보게 되고 더 늦은 잠을 청하게 된다. 배도 고프니 잦은 야식을 흡입하게 되고, 무언가 먹다보면 맥주 한잔 걸치는 것 역시 당연해진다. 침대에 곧바로 누워도 수면장애가 오는 밤이 많다 보니 새벽이나 아침에 잠들어 점심때 깨어나서 출근하게 된다. 저녁에는 스텝들과 일을 하는 시간이니 누군가와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약속을 정하기가 어렵다. 물론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맘은 좀 더 자고 좀 더 쉬고 싶다. 오랜 밤 생활은 이런 패턴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 버린다.

그럼 좋은 점은 없을까?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은 여전히 매력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더 나이가 들면 몸이 버티지 못할 거란 생각도 한다. 먼저, 아무래도 밤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들도 그렇지만, 라디오 피디로 입사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꿈이 심야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피디일 경우가 많다. 창밖에 별이 빛나고, 스튜디오엔 본인이 선곡한 음악이 나오며, DJ와 손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상상을 나도 했었다. 그리고 낮보다는 좀 더 젊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아무래도 밤의 연령층은 낮보다는 낮아진다. 출퇴근 시간보다 듣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도 어쩌면 장점이다. 조금 더 마음껏 연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이유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오랜 밤 생활을 하다보면 텅 빈 사무실이 편해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나이를 거스르기엔 감성이 충만한 밤이 더 좋음이 분명하다.

가끔은 밤에 일하는 게 많이 힘들다는 생각도 들고, 누군가는 이젠 심야프로그램은 그만해야 되지 않겠냐는 말도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라디오 피디로 살아가는 것, 내겐 나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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