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숙(아시안프렌즈 이사장)
이남숙(아시안프렌즈 이사장)

인도에도 겨울이 있다. 인도는 살인적인 더위로 악명이 높은 곳이지만, 12월과 1월 사이의 몇 주 동안은 기온이 급강하한다. 갑작스러운 기온 급강하는 심한 안개를 유발한다. 겨울의 북부 인도, 특히 델리는 짙은 안개와 매연으로 인한 시계 불량으로 항공기 이착륙 금지는 물론 철로 운송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델리로 가는 항공기의 동계 스케줄이 바뀌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 떨어지고 난 이후부터 다시 해뜨기 전까지 최저 온도가 섭씨10도 안팎으로 내려가면 인도인들이 느끼는 겨울이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숙자들에게 이 시기는 연중 최악의 시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겨울에 입을 옷이 부족해 고통받는다. 놀라운 것은 인도에서 지진이나 홍수같은 자연재해로 사망하는 사람들보다 옷이 없어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추위가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옷이 없어서 사람이 죽는 것이다.

패션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빠른 탓에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필요 이상의 많은 옷을 소비하게 된다.

인도도 예외는 아니다. 고도로 눈부시게 발전된 패션분야는 다채롭고 화려한 쇼에서 예술로까지 승화된다. 도시에서는 옷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천이 버려지고 있으며, 처치 곤란한 쓰레기로 쌓여간다. 하지만, 쇼장의 문 밖에는 누더기 옷을 걸친 거리의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온기없는 맨바닥에서 잠을 자고, 여성들은 월경기간 동안 더러운 넝마조각이나 나뭇잎 등을 사용함으로써 이물질로 인한 파상풍으로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점점 커져가는 빈부 격차는 아시아 각국 모두의 이야기지만, 인구의 절반이 극빈층인 인도에서 더욱 극명하다.

인도의 사회적기업인 군지(GOONJ)는 바로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이다. 도시에서 버려지는 옷들을 모으고 선별해 작은 시골마을로 보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한다. 무료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역개발 활동을 한 사람들에게 그 활동의 대가로 필요한 옷을 지급한다. 단순한 ‘자선’의 개념을 넘어 인도의 지역발전과 자원의 재순환과정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버려지는 옷을 활용하는 군지의 여러 프로젝트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생리대 보급이다. 수집한 옷에서 골라낸 면천으로 깨끗한 생리대를 만들어 가난한 시골이나 빈민가 여성들에게 나눠주는 활동-‘Not Just a Piece of Cloth’ 캠페인이다.

지난해 인터넷을 달군 깔창생리대 소녀 이야기가 생각난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거주지역에서는 일부 저소득층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 전체 여성들이 매달 겪는 고통이고 아픔이다.

아시안프렌즈는 인도 중북부 마드야쁘라데시 주 오르차 외곽지역 찬드라반 마을 아동들에게 하루 한 끼 영양간식을 제공하고, 인근 로티아나에 마을학교 운영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예그리나’라는 대학생 동아리와 함께 1월 초 현지를 방문, 가임기 여성들을 위한 면 생리대 280키트를 제공하고 직접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였다. 이를 위해 ‘예그리나’는 사전에 면 생리대 제작방법을 배우고, 키트 구입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활동도 벌였다. 대학생인 자신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두 세 명의 자녀를 가진 엄마들과 마주앉아 생리대를 만들고 여성위생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본 프로그램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여성들의 건강한 삶과 존엄성을 지키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버려지는 ‘옷’에 관심을 갖는 ’군지‘와의 협력도 적극 모색할 것이다.

델리 인디라 간디 공항 기념품가게에서 새로운 시작의 신이자 장애를 제거하는 신,

지혜의 신으로 알려진 가네샤 신상을 샀다.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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