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 키우지 못하면 국내 중전기 산업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은 수출이다. 내수가 경제전체를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출은곧 우리나라의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산업화가 시작된 후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수출이 근래 주춤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 실적은 전년대비 5.9% 줄어든 4955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입이 7% 가량 줄어 무역수지는 900억 달러 가량 흑자를 기록했지만, 불황형 흑자를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산업부는 올해 세계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우리나라의 수출을 주도하는 휴대폰, 가전 자동차 등 주력 품목의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지난해 보다 수출은 2.9% 가량 늘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보호 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중국의 경기회복 여건 등에 따라 수출은 등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소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세계를 쥐락펴락 하는 곳이 G2인 미국과 중국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G2는 인구, 군사력, 경제력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해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얻었다. 엄밀히 말해 경제분야 세계 경쟁력만 따진다며 독일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들어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정체 되는 가운데도 제조 강국 독일은 견실한 펀더멘털을 무기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유럽 경제를 이끌고 있다. 세계경기 침체와 상관없이 나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란 독일의 강소기업에서 찾을 수 있다.

EU집행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중소기업은 약 400만개로 전체 기업의 99%에 달한다. 이중 34만개 기업이 수출에 참여한다. 일자리의 71%를 중소기업이 담당한다. 또 법인세의 55%를 중소기업이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체 기업 수의 99%, 고용의 88%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어 독일과 비슷하지만 부가가치 창출에 큰 차이가 있다. 중소기업의 수익률이 떨어지다 보니 법인세 부담률은 10% 언저리다. 우리나라와 독일을 차이라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소기업’ 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정부도 뒷걸음질 치는 수출을 회복하기 위해 일부 품목에 의존한 수출전략을 다양화해 중소 중견기업의 역량을 높일 계획이다. 특히 수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을 확대해 수출기업과 품목을 다변화할 방침이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최근 중소기업인들과 만나"100만 달러 이하를 수출하는 중소기업은 13.5%에 불과한데 지원 예산의 70%가 이 기업들에 몰려 있다"며 "1000만 달러 이상 수출하는 기업이 50% 이상이 되는 만큼, 내수기업을 수출기업화 하는 것보다 기존의 수출선도·강소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책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중전기산업 분야는 왜 강소기업이 없을까.

낮은 진입장벽 기업난립 초래...물량 나눠 먹기로 전락

산업의 펀더멘털에 해당하는 강소기업 육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중전산업으로 눈을돌려 현실을 직시했을 때, ‘우리는 왜 강소기업이 없을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되고 대답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구자윤 한양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구 교수는 대한전기학회 회장과 전력산업 최고의 의결기구인 전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한전사외이사, 시그레(CIGREㆍ국제대전력망기술협의체)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구자윤 한양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태동이 황실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한 가장 오래된 뿌리산업으로 자원이 없는 척박한 환경속에서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며 “그동안 완만한 성장을 했지만 최근들어 오래된 설비에 대한 교체수요는 물론 에너지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1990년에 들어 전력산업이 완만한 성장을 하면서 중전산업도 지속성장을 하고 있지만, 1970년대 이후 30여년간 역할과 역사를 감안할 때 중전기업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 교수의 말대로 중전산업의 성장속도는 물론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산업의 중요성에 비해선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구 교수가 밝힌 중전산업의 국가경제기여도를 보면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제조업체의 4.1%인 2798개에 달하지만, 전체 매출은 40조원(2.8%) 수준이다. 종업원수는 11만명으로 전체의 3.7%에 불과하다. 국내 중전 중소기업이 제조업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고용인력은 제조업 평균보다 많은 비효율 영세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구 교수는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시장 까지 고려하면 국내 중전기분야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구 교수는“ 올해 중전기기 분야의 수출목표액이 150억 달러 가량 된다”며 “하지만 전체 2700여 중소기업 중 수출기업은 100여개 기업 남짓해 3% 수준에 불과하며 이중에서 중전대기업 5~6개사가 전체 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중전기산업이 영세화 되고 경쟁력을 잃어간 이유는 뭘까.

구 교수는 국내 중전기기 업체들이 국내외 경쟁력을 잃고 있는 이유로 제도적 문제와 함께 좁은 국내시장에서 영세 기업간에 출혈 경쟁을 하다보니 오히려 毒(독)이 됐다고 강조한다.

“중전기기 시장을 이끌고 있는 곳은 한전을 비롯해 일부 공기업, 건설회사 들입니다. 한정된 시장에서 기술 역량은 부족하지만 단순한 자격요건만 갖추면 공기업 등 수요처에 납품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업의 규모는 영세해 질 수밖에 없어요.”

이어 “구매처에서 기술차별화를 통해 변별력을 높이려고 해도, 진입장벽이 높다는 등 온갖 민원이 쏟아집니다. 그렇다보니 일하는 사람은 시끄러운게 부담스럽고, 일정 자격만 있으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전문기술이 필요한 부분까지 문턱을 낮췄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은 곧 산업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시장규모에 비해 업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기술을 개발해 경쟁력을 키워야 하지만, 진흙탕속 가격 경쟁만 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인력과 자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하겠습니까.”

기술개발 선도기업이 기술카피 때문에 되레 피해를 보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구 교수는 또 수요처의 입맛에 맞는 기술개발이 오히려 기술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중전기 중소업체들의 경우 한전의 수요에 맞는 기술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산업계에서 발굴된 과제는 수요 검토 단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진전이 없죠.”.

구 교수는 정부의 자재구매 제도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정부는 매년 경기를 살린다고 조기발주를 하지만, 오히려 중소기업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상반기에 발주를 많이하고 하반기에 줄이면 인력 확보 문제는 물론 자금 흐름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또 납품할 물량이 일정 시기에 몰리면 품질 테스트를 할 시간이 부족해 납기를 못 맞출 수가 있습니다.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정부는 계속해서 이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어요. 기업들은 계획 생산을 할 수 있게 1년 균등발주를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는 귀를 닫고 있습니다.”

중전기산업 강소기업 육성해 수출 경쟁력 확보 위해선

발주기관에서 기술품질 규격 높여.. 기술개발 유도해야

구 교수는 세계전기산업분야 한국 대표로서 중국의 전력산업 관계자를 자주 만나는데 대화하면서 느낀것이 2030년경에는 우리나라의 중전기 업체 중 중국 업체와 경쟁해서 살아남을 기업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미 중국 업체들의 R&D투자와 생산규모 등 모든 면에서 우리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일부 핵심기술은 우리를 한참 따돌렸죠. 세계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는데 현재의 기술력으로 우리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구 교수는 국내외 에너지보고서를 토대로 전 세계의 전력수요는 2040년까지 연평균 2.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따라 송배전망은 7500만km가 신규 증설되며 관련 누적투자는 8조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미국, 유럽연합 등 세계 전력산업을 주도하는 지역에선 신재생을 비롯한 친환경 설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기술개발을 통해 친환경 중전기 시장에 대응해야 합니다.”

아직은 국내 중전산업 중소기업들이 R&D에 대한 투자여력이 부족하고, 해외시장 개척 역량이 떨어지는 만큼 한전 등 전력공기업이 구매, 규격 제도는 물론 운영시스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구 교수는 “중전분야 수출 강소기업 육성을 위해선 최대 발주기관인 한전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단계적으로 노후화한 전통 전력기기를 친환경 기기로 교체해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산업계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기기 구매규격을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DF를 비롯한 세계적인 전력회사들은 10년 후의 규격까지 제시를 해줍니다. 기업들에게 계획에 따라 제품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게 돕고 있죠. 전력기기는 인증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잦은 구매구격 변경은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끝으로 “사고의 혁신을 이루고 산업 생태계를 새로 구축해 자체 기술개발은 물론 해외시장진출 역량을 갖춘 글로벌 히든 챔피언 육성을 위해 한전과 전력산업계가 다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