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폐지로 경쟁 본격화, 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로 업체 간 매출은 양극화”

배전반은 단체수의계약 상위 10대 물품 가운데 레미콘, 아스팔트콘크리트, 변압기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납품실적(지난 2000년 기준 1611억원, 비중 3.8%)을 기록할 정도로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활성화된 업종이었다.

배전반 업계가 정부의 단체수계 폐지결정 이후 가장 극심하게 반대투쟁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당시 약 530개 배전반 업체들이 가입돼 있던 전기공업협동조합은 2004년 8월 ‘단체수의계약 수호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2005년 1월에는 긴급 대책회의에 이어 ‘배전반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조직적으로 반대투쟁을 벌였다. 서울행정법원에 배전반을 단체수계 대상에서 제외시킨 정부 조치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방침대로 배전반은 2005년 4월부터 단체수계 품목에서 제외되고,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전환됐다. 때문에 개별기업 간 입찰 형태로 납품업체가 결정되면서 배전반 업계의 출혈경쟁은 한층 가열됐다.

업계 관계자는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폐지된 것은 중소기업 판로확보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와 달리 로비영업 등이 횡행하고, 업체 간 갈등과 반목, 다툼, 투서질이 난무하면서 문제가 속출했기 때문”이라며 “현실을 무시한 규정과 불공정한 물량배정으로 시장 질서를 흐린 게 제도폐지의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배전반 업계가 기존의 최저가 1인 낙찰자 방식의 폐단을 보완하기 위해 2006년 7월 도입된 다수공급자계약제도(MAS)나 중소기업 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제도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단체수계 폐지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특히 중소기업 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제도는 NEP(신제품), NET(신기술), 조달우수제품, 성능인증 등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개발제품을 공공기관이 수의계약으로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배전반 업계가 안정적인 단체수계 물량에 안주해 기술개발을 등한시했다고 지적하며 제도 폐지에 환영 입장을 밝힌 업체들이 공공조달 시장에서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갔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10년 간 케이디파워, 서전기전, 베스텍 등 상위 10위권 업체들이 전체 배전반 조달시장의 50~60%를 점유하고, 나머지 물량을 업체들이 경쟁 입찰 형태로 나눠 갖는 양극화 현상으로 이어졌다. 현재도 수의계약이 가능한 기술개발제품 관련 인증을 가진 배전반 업체는 40여개사 수준이다.

과거 조합 내부의 자체 기준에 따라 물량을 나눠갔던 배전반 업계가 단체수계 폐지 이후에는 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제도 등을 활용해 매출을 확대해 나갔지만 업체들의 면면만 달라졌을 뿐 기업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연간 330억원 규모의 단체수계 실적을 기록했던 개폐기 업종도 배전반보다 먼저 단체수계 대상에서 제외된 이후 중기 간 경쟁품목에 포함되면서 20여개 업체가 폐업 또는 부도 위기를 맞는 등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2007년 전력기기사업협동조합(옛 서부개폐기사업조합), 중전기사업협동조합(옛 중부개폐기사업조합) 등 사업조합을 구성하고, 양 조합이 한전의 연간단가 입찰에 참여해 물량을 수주한 뒤 이를 조합원들에 배정하는 식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이렇게 사업조합의 틀에 들어간 업체(2008년 기준)는 전력기기조합 11개사, 중전기조합 11개사 등 22개사였다.

지난 10년 간 사업조합 내에서 덤핑 등 무리한 가격경쟁을 억제하며 시장가격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개폐기 업계는 현재도 50여개 업체가 양대 조합의 우산 아래서 물량을 나눠 갖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신규업체들이 계속 진입하고 있어 개별기업의 파이는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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