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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비움과 다양성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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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새해엔 대부분 자신의 삶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곤 한다. 필자도 새해에 존경하는 어른들로부터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인생에 뭘 채우겠다는 각오보다 자기 것을 비우고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오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국과 같은 덕담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성숙기에는 자꾸 자기 의욕을 채우기보다 마음을 비우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의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인생도 풍부해지고 새롭게 사는 재미도 생길 터니 말이다. 따져 보면 우리 인간 세상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좋아하는 어떤 생태학자가 ‘생물종 다양성’을 강조한 패나키 이론이란 것을 발표한 적이 있다. 자연생태계도 성숙기에 접어들면 점점 얽히고설키면서 경직화되어 결국 어느 순간 붕괴되는데 이 때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생물종 다양성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다양한 생물종 중에서 누군가 생태계 질서를 재창조해 나가는 새로운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한두 가지 종이 모든 생태 공간을 채우는 것이 겉으로 통일된 모습의 강철군단처럼 보이지만 내실은 가장 취약하고 위험한 생태계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시장경제도 그런 것 같다. 일부 재벌이 시장을 독식하는 경제가 어떤 불의와 부작용을 유발하는지 지금 우리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면서 체험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정체되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 시장에 빈 공간이 없으니 다양한 주체, 기업, 기술이 등장할 수가 없고, 역동적인 경제성장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필자가 새해부터 뜬금없이 인생, 시장경제 그리고 자연생태계에 이르기까지 ‘비움과 다양성의 미학’을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올해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같이 논의되는 중요한 해다. 수년간 관련업계에서 어깨 넘어 공부하면서 들은 얘기는 원전과 석탄발전이 저렴해서 시장에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일부 열혈론자들은 원전과 석탄 확대에 반대하면 공장이 어려워지고, 기업과 한국경제가 곧 망할 것처럼 침소봉대하기도 한다. 문제의 핵심은 재벌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시장질서로 부당한 독식을 막자는 것이다. 원전과 석탄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르게 해서 과도해진 원전과 석탄에 적정한 제 자리를 찾아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상품시장이든 전력시장이든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이 숨 쉴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기고, 한국경제든 전력산업이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어려운 살림살이와 경제여건에서 저렴한 전기요금을 위해 기저설비의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는 반론을 펼 수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고 경제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모든 발전설비의 공정한 경제성 평가를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백번 양보해서 재평가 결과 원전이나 석탄이 싸다고 하자. 그렇다고 전력시장을 원전과 석탄발전으로 계속 채워나가야 할까? 성숙기 전력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채움과 독식의 경제학’과 ‘비움과 다양성의 생태학’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어느 유명한 문인이 경제학자는 ‘가격(price)’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가치(value)’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촌철살인과도 같은 지적이다. 어쩌면 전력업계는 전력의 계통한계가격에 대해선 잘 알지만, 자신의 생존기반인 전력생태계의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2017년 정유년 새해! 전력업계는 이 어지러운 난세에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전력, 에너지,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이르기까지 일관성도 없는 수치로 정치적 공방을 벌이기보다 긴 안목으로 ‘비움과 다양성의 미학’을 한번 고민할 시점이 된 게 아닐까?

작성 : 2017년 01월 09일(월) 09:14
게시 : 2017년 01월 11일(수) 09:05


정형석 기자 azar76@electimes.com        정형석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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