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열식 체험서 번개테마로 고정관념 허문
‘보고 느끼고 맛으로 즐기는’ 이색 체험관

12월초의 제주는 봄 날씨에 가까웠다. 울긋불긋한 단풍 대신 짙푸른 수목이 낯선 이를 반긴다. 봄기운을 머금은 채 이곳만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제주시에서 평화로를 타고 20분 남짓 가다가 1115번 국도로 들어서면 제주 명물인 오름이 눈앞에 펼쳐지고, 한라산이 가까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20분을 갔을까. 돈내코유원지를 앞두고 차는 서귀포시 토평동에 멈춰섰다. 해안가와 달리 이곳 토평동은 높이 1950m의 한라산이 북풍을 막아줘 거센 바람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전체 면적만 8만3000㎡ 규모…축구장 28개 정도 크기

눈앞에는 세계 최초로 번개를 테마로 만들어진 과학체험관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번개과학체험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일단 규모 면에서 놀라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압도된다. 맑은 날엔 한라산 정상이 보일 정도로 지척이다. 주위엔 오렌지빛 장식을 한 것처럼 감귤농장이 펼쳐져 있고, 우거진 수목과 갈대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2015년 3월 개관한 번개과학체험관은 전체 면적만 8만3000㎡ 규모를 자랑한다. 축구장 28개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체험관 건물을 비롯해 번개를 맞은 흑돼지를 맛볼 수 있는 식당, 동물농장, 감귤농장, 주차장, 카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을 표방하는 이색 체험관답게 도슨트(해설사)가 직접 안내를 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주로 아이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다보니 젊은 도슨트가 눈에 띈다. 관광 분야 특성화고등학교와 협약을 맺고 매년 젊은 인력을 조달

한다.

경기 부천서 왔다는 이유진 도슨트(20)는 “전체 프로그램을 체험하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도슨트가 직접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니 생소한 뇌(雷)과학도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어른과 아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겨울방학 시즌을 맞아 알찬 방학을 보내기 위해 체험관을 찾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창의력과 탐구력을 길러주는 이색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이곳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학습놀이터’가 됐다.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과학의 신비함을 직접 체험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창의력・탐구력 길러주는 이색 체험학습 프로그램 인기

특히 벤자민 플랭클린, 제임스 웜스허스트, 에디슨, 테슬라 등 전기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학습관도 따로 설치돼 있어 아이들 과학교육 프로그램으로 손색이 없다.

국진호 번개과학체험관 경영기획부 대리는 “주요 코스는 우선 체험관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운영하는 식당서 번개를 맞은 흑돼지를 맛본 후, 감귤농장 체험으로 이어진다”며 “과학교육과 더불어 자연을 즐길 수 있어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6만명이던 방문객 수는 올해 10만명으로 껑충 뛰었다. 한 달에 평균 7000~8000명이 제주 번개과학체험관을 찾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곳은 청소년 수련활동 인증기관으로 지정돼 초·중·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뿐만 아니라 유치원생들의 체험학습 명소로 인기가 높다. 제주 여행 중에도 아이를 위한 체험지, 제주도 추천 여행지로 꼭 한 번은 다녀가야 할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번개과학체험관은 총 2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1층은 낙뢰솔루션, 플라즈마, 오로라관 등으로 이뤄진 스터디 공간, 2층은 카페테리아, 번개 아트, 테슬라뮤직홀 등 즐거운 놀이처럼 과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대표적인 번개뮤직쇼는 ‘번개의 소리’를 이용해 ‘음악’으로 구현한 한 편의 공연이다. 세계적인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가 제작한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 번개가 나올 때 발산하는 스파크(불꽃)를 주파수별로 나누고, 다시 음계로 분류해 클래식부터 대중가요까지 천둥소리를 이용한 다채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다. 공연에서는 귀마개를 사용할 정도로 압도적인 사운드가 전해진다.

번개 맞은 대추나무를 구경할 수 있는 체험관도 있다. 기술진이 직접 제작한 번개 생성기를 이용해 대추나무에 100만 볼트의 낙뢰가 내리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옛날부터 번개맞은 대추나무는 ‘벽조목(霹棗木)’이라고 불리며 잡귀를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져 도장으로 만들거나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워낙 귀하고, 가격도 비싸 일반인이 구경하기 힘든 물건 중 하나다.

구름 속에서 생성되는 번개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번개터널에선 관람객이 직접 적란운(번개가 생성되는 구름) 속에 들어가 번개가 생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유리 표면에 손을 대면 변화무쌍하게 방전되는 모습을 통해 전기와 빛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플라즈마볼’도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밖에 건물과 조형물의 꼭대기에 설치돼 번개의 피해를 막아주는 피뢰침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낙뢰관’, 정전기를 이용해 삐죽삐죽 번개 맞은 머리를 만들 수 있는 ‘반 데 그라프(정전기관)’ 등도 인기다.

(인터뷰)김동진 번개과학체험관 대표

“번개과학체험관은 어렵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수학공식이나 이론학습에 치우친 기존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개념이해와 원리탐구를 통한 참신한 과학교육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번개과학체험관의 설립자인 김동진 대표는 “과학에 대한 쉬운 접근을 유도하기 위해 체험관을 설립하게 됐고, 세계 최초가 된 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에 번개과학체험관이 설립된 것도 이곳 출신인 김 대표의 고향 사랑과 무관치 않다.

김 대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제주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것이 체험관 설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전기기술사이자, 전기공학박사, 기업 CEO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있다. 현재 피뢰접지 분야 전문기업인 선광엘티아이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전기 분야에선 누구보다 전문가다.

김 대표는 “단순히 번개체험관만을 위해 8만3000㎡(2만5000평)의 대규모 규모 부지를 사들이진 않았다”며 “향후 이곳을 과학 테마 파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번개과학체험관은 과학 테마 파크의 출발점이란 얘기다. 과학을 테마로 ‘먹고’, ‘자고’, ‘즐기는’ 공간을 창출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내년엔 세계 최고의 자동차경주대회인 포뮬러 원의 축소판을 재현, 1.5km 길이의 아이들 카트 경기장을 만들 계획이다.

김 대표는 “여기에 100억원을 투자해 스마트 농장을 만들어 과학과 농업이 융합되는 체험학습 현장을 조성하겠다”며 “최종적으로는 호텔 등 리조트를 건설해 2020년까지 이 일대를 대단위 테마 파크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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