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한서 MBC Producer
손한서 MBC Producer

노래는 찰나의 순간을 소환하고 함께 추억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어떤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계절을 함께 느끼기도 하며, 지금 이 순간을 공유하기도 한다.

요즘같이 나라가 어지럽고 마음이 답답할 땐, 김광석의 목소리나 양희은, 전인권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양희은씨가 직접 부른 ‘아침 이슬’이나 ‘상록수’를 듣고 가슴이 울컥한 사람들이 많았고, 전인권의 목소리로 울려 퍼진 ‘애국가’와 ‘행진’은 큰 울림을 주었다. 100여명의 대중음악인들이 함께 참여한 ‘길가에 버려지다’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고, 위트 있는 풍자로 펀치라인을 맞춘 산이의 힙합곡 ‘Bad Year’는 차트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아직도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이 시절엔, 거의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을 줄이고 음악을 틀었다. 주로 현재 유행하지 않는 오래된 노래나 잔잔한 팝송, 평소에 듣기 힘들었던 연주곡들이 자주 흘러나왔다. 그 때즈음 공개된 아이유와 김창완이 다시 부른 ‘너의 의미’는 따뜻한 메시지를 주면서 큰 사랑을 받았다. 수많은 세월호 추모곡들도 지금까지 우리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

계절마다 울려 퍼지는 시즌송이라 불리는 노래들도 있다. 듣기만 해도 그 계절의 바람과 온도, 느낌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라디오피디로 일하면서, 봄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틀지 않을 수 없다.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벚꽃이 흐드러진 길을 걷는 화면이 눈앞에 펼쳐질 정도다. 아무리 많이 선곡돼도 청취자들이 원하고 또 원한다. 봄에는 이런 살랑살랑한 분위기의 어쿠스틱한 노래들이 사랑받는다. 여름엔 걸그룹들이 많이 컴백하는데, 아무래도 사운드가 시원하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밝고 맑은 모습에 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어서 일거다. 올해는 트와이스와 여자친구, 아이오아이의 노래들이 차트를 가득 채웠다. 가을은 발라드의 계절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발라드 가수들의 컴백이 늘어난다.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들으며 외로움을 함께 즐기기도 한다. 추운 겨울에는 포근한 감성이 노래를 타고 온다. ‘커피’처럼 따뜻한 느낌이 들어가거나 올 한해를 돌아보게 하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며, 제목에 ‘겨울’이나 ‘눈’처럼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특별히 많이 들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따뜻하고 풍부한 사운드를 가진 노래가 주로 많다. 개성 짙은 화음이 돋보이는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정말 사랑했을까’나 악기들을 켜켜이 쌓아놓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같은 음악을 들으면 니트와 코트를 챙겨 입은 느낌이 든다. 청취자들이 라디오로 보내는 신청곡에도 이런 다양한 변화들이 녹아있다.

지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거나 누군가와 함께 듣고 있는 음악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오늘을 몸으로 기억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오늘의 추억을 소환하게 될 거다. 그래서 우린 가슴 아플 수도, 기쁠 수도 있을 거다.

이 순간에도 내 인생을 쓰는 노래들이 있을 테고, 우리 역사의 순간들을 함께 추억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테니, 주변으로 귀를 슬쩍 열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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