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방송작가
이용규/방송작가

김수영의 시 <풀>의 일부분이 문득 떠오른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지금 한국은 풀의 바다다. 그저 풀도 아니고 속까지 바싹 말라있는 삭정이 같은 풀의 바다다. 민중의 바다다. 민중이 내밀고 있는 촛불의 바다다.

어느 국회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억압의 바람은 다시 촛불을 들불처럼 번지게 하고 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나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농단에 대한 불같은 경고다.

어떻게 한 나라의 국정이 한낱 아녀자와 펜싱선수, 광고쟁이의 책상 앞에 놓이고 판단되고 결정될 수 있었단 말인가. 더러 최순실을 고려 말 신돈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틀려도 한참 틀렸다. 신돈은 적어도 그만한 공식적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 쓰러져 가는 고려 말 공민왕과 더불어 천지가 개벽할 개혁을 선도하기도 했다. 그러니 신돈과 최순실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국정농단은 유사 이래 최고의 참사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이런 대통령과 이런 비선라인에 의해 세월호의 아이들이 바다에 쓰러져가고, 개성공단이 폐쇄됐으며, 사드가 들어왔다면 어떻겠는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더불어 가장 먼저 외친 슬로건이 국민행복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 행복시대는커녕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시대가 됐다. 이명박, 박근혜의 10년은 우리 앞에 놓인 녹조의 사대강이자, 한겨울 추위에 광장에 모인 민심의 촛불이다.

이런 내홍의 문제는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선택했으니 감당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치자. 하지만 바깥을 돌아보면 상황은 더욱 암울해진다. 중국만 해도 그렇다. 중국은 사드문제 때문에 연일 방송과 언론에 한국을 몰아세우더니 급기야 한류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에 들어갔다. 한국의 한일군사보호협정은 이런 중국의 공세에 기름을 붙는 격이 됐다. 중국에서의 한류는 이제 설자리를 잃게 됐다.

최근 연예인들의 중국 입국이 거절되거나 공연이 취소되거나 방송물이 금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되고 있다. 겉으로 들어나지 않았지만 한중합작이나 자금 지원의 중단사례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합작 계약서에 도장을 날인하고 촬영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오간 상태에서 입국 직전에 거부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중국에 대해 얼마 전 한 전직 국회의원은 <떨거지들>이라는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을 해댔다. 과연 그럴까. 중국이 과연 그럴까. 나 역시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었다고 믿는다. 철저한 사회주의였고, 문화혁명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사생아까지 낳은 나라였으니까. 하지만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그들의 경제성장 속도는 세계 최고이며 세계1위의 외환보유고 국가고, 13억의 인구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을 중국 사람들은 <90후세대>라고 한다. 이들 세대의 성장 환경은 전 세대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들의 대학진학률은 10여 년 전 세대보다 10배늘었고, 경제 혜택을 누렸으며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곳간을 손에 쥐게됐다. 그래서 이들은 중국의 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를 갖게 됐고 중국인들마저 <또 다른 중국인>이라 부르게 됐다.

이런 90후 세대의 인구만 4만2000만명에 달한다. 미국과 서유럽을 합한 수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가치 추구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13억 개의 중국을 외치는 것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청년들은 창업의 길을 선택한다. 중국 북경의 따샨즈를 중심으로 창업카페가 성행하고 있으며 하루 4만여 개의 기업이 탄생한다. 우리나라의 대졸자인 경우 6%만이 창업을 꿈꾸고 있는 반면 중국은 대졸자 중에서 무려 47%가 창업을 꿈꾸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대졸 창업자 대부분이 식당, 카페 등 생계형 창업을 꿈꾸는 반면 중국의 대졸자들은 각종 IT기업을 꿈꾼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는 중국이 아닌 우리 무역협회에서 나온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어찌 암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어찌 국정을 농단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주 또다시 광장은 촛불로 일렁일 것이다. 이건 단지 국정 농단에 대한 책임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완전히 뿌리 채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이자 자성의 목소리기도 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추위에도 광장에 나가는 것이다. 촛불을 드는 것이다. 풀잎처럼 일어서서 나온 것이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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