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 인도 중북부 마드야쁘라데시 주 오르차 지역 여행이 잡혀 있다. 오르차 외곽에 있는 로티아나에 마을학교를 설립 운영하기 위한 현장 방문이다. 6년 전인 2010년 옆 마을 찬드라반에서 마을학교를 운영, 1년 후 주 정부로부터 정식학교 인가를 받은 경험이 있으니 이번 로티아나 마을학교도 별다른 문제없이 잘 될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다.

찬드라반이나 로티아나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아디바시 족이다. 아디바시는 인도에서 원주민, 부족민 등으로 이해되며 시골 오지에 거주하는 하층카스트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도 사회에서 하위에 있으며, 법적으로 불가촉천민(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과 유사한 카테고리인 지정부족(scheduled tribe)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들판이나 산속에서 고립돼 살던 토속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정 카스트는 불가촉천민 집단을 통칭하는 말이다.

불가촉 천민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유래한다. 카스트 제도는 수천년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 온 인습적 굴레다. 계급의 최상층은 브라만(승려), 다음은 크샤트리아(귀족, 무사), 다음은 바이샤(농민, 상인, 연예인), 최하층은 수드라(수공업자, 하인, 청소부)이다. 수드라의 일생도 고달프고 힘든 삶이지만, 이 카스트의 질서에도 들지 못하는 이들이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다.

인도 전체 인구의 약 16%가 이 달리트 계급에 속하며, 공식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어 있으나 인도 전역에서 차별은 여전히 만연해 있다. 힌두 사원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신체접촉이 금지되어 있다. 심지어는 달리트가 지나간 길은 오염된 다고 하여 달리트는 자신이 지나간 길은 다시 청소를 해야 하고, 마을 안의 공공우물도 사용하지 못하므로 이들만 전용으로 사용하는 우물은 각종 동물의 뼈로 그 주변을 에워싸 표시를 해 둔다.

1955년 인도는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다만 헌법을 기록한 잉크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카스트라는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투와 이름에서 인도인들은 각자의 카스트를 눈치채며, 특정한 행동거지에 따라 자신들을 서로 알아본다.

2010년 11월 찬드라반에 마을학교를 설립할 당시, 이 마을 사람들은 국제빈곤선 기준인 하루 1.25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한 명이 아니라 한 가정 5〜8명이 생활하는 절대 빈곤으로 자녀 교육은 물론 기본적인 의식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1년 후 마을학교가 주 정부로부터 정식학교로 인가를 받은 후, 우리는 마을 어린이 70여 명에게 기초 영양식과 학습 기자재, 의류 등을 지원해 오고 있다. 교육서비스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됐던 아이들은 학습을 통해 지적 성장과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찬드라반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마을학교 설립을 간절하게 열망하는 곳이 인근 로티아나 마을이다. 50여 가구 200여 명이 거주하는 로티아나 마을의 학령기 아동은 50여명이다. 이 아이들을 문맹에서 눈뜨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빈 닭장 터에 지붕을 얹고 바닥을 깔고 아이들을 모은 다음 헌신적으로 가르쳐줄 교사를 물색해야 한다. 새해 첫 여행이 기대되면서 설레고 걱정이 되는 이유이다.

마을학교 운영을 책임질 현지 파트너를 다독이고, 마을학교 운영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으는 일이 숙제로 남아 있다.

‘신도 버린 사람들’을 쓴 나렌드라 자다브는 ‘미운 오리새끼’ 동화를 거론하면서 “불평등한 카스트 제도에 갇혀 얼마나 많은 백조들이 스스로를 미운 오리새끼로 여기며 형벌 같은 삶을 살다 갔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고백한다. “내 운명은 내가 선택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바로 교육 이었다”고.

이남숙(아시안프렌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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