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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광장)터키의 농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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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인류 최초의 공장이자 혁신 플랫폼인 터키에서 배우다.
크로마뇽인은 터키의 고원에서 작물과 가축을 발명해서 농업을 시작했다. 이것은 인류 역사 상 가장 큰 대박을 만든 창업이었다. 농업혁명 전후로 토지가치는 무려 2만 배 커지고, 토지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은 그 이상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농업의 시작으로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만들고, 전쟁을 하기 시작했으며, 충효와 인의예지를 알게 되었다. 멜서스의 주장과 달리 100억 명 이상의 인류를 부양할 수 있는 먹거리를 얻게 된 것은 바로 터키에서 창업한 농업 덕분이다. 인류는 농업을 하고 나서야 잉여를 누리고, 문자와 빛을 사용하는 도시를 만들어 비로소 문명을 열었다. 인류 문명사의 주인공을 하나만 꼽으라면 당연히 터키이다. 터키는 엄청난 곳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이자 신석기 농업이 필요로 하는 첨단 석기를 만들었던 카탈후육은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다. 9000년 전, 카탈후육에서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수 백 km 이상 떨어진 화산지대의 흑요석과 해안의 조개껍질 등 다양한 재료를 수입해 첨단 신석기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인류 최초의 공장이자 혁신 플랫폼인 셈이다. 주변의 광대한 평원의 농사는 카탈후육이 공급하는 첨단 석기를 사용해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인구 증가를 경험하게 된다. 늘어난 인구와 경제활동을 감당하기 위해서 법과 규칙이 만들어지고, 드디어 도시는 공장 기능을 벗어나 농업경제의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한다. 지금이나 신석기 시대나 도시에는 잉여가 있고, 서비스가 있다. 식량과 에너지가 충분하고, 그 잉여로부터 자본이 형성되며, 경험과 지식으로부터 일자리와 소득이 크게 높아진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여 거래와 서비스를 통해 생산하지 않고도 부양할 수 있는 경제가 실현된다. 터키에서 발명된 이 도시 플랫폼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와 그리스와 중앙아시아에서도 복제되었고, 멀리 중국과 인도, 로마에까지 퍼지게 된다. 초기 기독교를 배양해 융성시킨 곳도 산약성서의 터키였고, 로마와 이슬람의 절정도 터키에서 이루었으며 실크로드가 글로벌 교역의 중심 플랫폼으로 가장 큰 역할을 드러낸 곳도 터키였다. 유럽을 대서양으로 내몰아, 얼떨결에 대항해 시대를 열도록 한 것도 실크로드 경제권의 서쪽 종점인 터키 콘스탄티노플의 봉쇄 때문이었다. 농업문명의 시작과 끝이 모두 터키에서 있었던 것이다.
지정학적으로도 터키만큼 핵심의 위치가 없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아시아와 지중해권으로 이루어지는 4개 문명 아치의 중심 키스톤이기 때문이다. 터키를 통하지 않고는 문명간의 교류도 없고 동서 간의 충돌도 없다.
지난 여름, 소망하던 터키에 갔다.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최초의 도시는 왜 터키에서 생겼는가? 터키의 서쪽의 문명은 왜 석조문명인가?
터키 서남부의 대부분은 아나톨리아 고원이다. 콘야 지역을 품고 있는 아나톨리아 고원은 농사가 엄청 잘 되는 해발 1000m 이상인 고원의 대평원으로 밀과 참깨, 올리브, 포도 농사가 아주 잘된다. 아나톨리아, 특히 최초의 도시 카탈후육이 있는 콘야 지역의 땅은 지중해가 융기해 생긴 석회암 기반의 융기고원이며, 인접한 하산 화산이 대폭발해 화산재가 덮어 두터운 화산 퇴적층이 생겼다. 이런 지충 지역은 지하수가 풍부해서 강이 드물어도 물이 부족하지 않아 밭농사가 잘 된다. 다만 이곳의 산들은 웬만하면 수목한계선 보다 높아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을 움직여도 큰 나무를 보기 힘들다. 산은 대체로 사암이나 응회암으로된 바위산이다.
터키 콘야의 이 돌들은 경도가 물러 석기 제작에는 부적합한 대신 손질하기는 쉬워 잘라내기만 하면 그대로 벽돌이 된다. 더구나 이 돌은 팔 때는 연하고 부드럽지만, 파낸 후에 공기와 만나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무가 귀한 아나톨리아에서는 부자들은 돌로 건물을 지어 살고 가난한 자들은 돌을 파낸 지하에서 살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카파도키아의 동굴마을이다. 터키의 서쪽으로 그리스에서 로마까지도 나무보다 돌이 흔했으니, 오늘날 유럽의 석조유물은 모두 나무가 없고 무른 돌이 풍부해서 생긴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콘야 고원 대평원의 신석기시대 농부들에게 석기(농기구)를 만들 수 있는 경질의 몸돌(돌 재료)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은 큰 문제였을 것이다. 농사는 엄청나게 잘되는데, 이것을 도구 없이 손으로만 해야한다면 기계없는 공장인 셈이다. 석기용 경질몸돌은 수 백 리 밖의 화산(Mt. Hasan. 이 화산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살던 산이다.)에서 나는 흑요석을 구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 농부 자신이 경질의 몸돌을 멀리가서 구하는 것은 매우 비싼 방식이다. 누군가를 보내서 많은 양의 몸돌을 구해오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카탈후육은 자연스럽게 하산산과의 흑요석 거래가 왕성한 거점이 되었고, 석기 소비자들이 찾는 역세권이 되었을 것이다. 석기의 재료가 없어 어려움을 가장 먼저 겪은 곳에서, 석기의 재료인 흑요석을 수입, 가공, 판매하기에 효과적인 거점이 최초로 창발했고, 이것이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의 도시가 탄생한 이유이다.
결국 최초의 도시는 자원 부양능력의 한계로 인한 결과였다.(언제나 문제가 있어야 해결을 찾는다.) 주변엔 엄청난 농업지대가 있어 생산된 석기에 대한 수요가 넘쳤고 숙달된 전문가가 생산한 돌도끼나 돌칼은 아이폰만큼 비싸게 팔렸을 것이다. 터키에 가보라. 나무가 없고 돌이 무름을 볼 수 있다. 해서 집은 돌로 짖는다. 돌칼과 돌도끼를 만들 수 있는 돌은 수입해야 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터키의 서쪽에는 목조문명이 없다. 터키는 오늘도 동서와 남북 간 거래의 거점이다.
지금 우리는 심각한 부양능력 한계를 만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주어진 한계 안에서 문제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플랫폼은 우리에게 없는 것으로부터 올 것이다. 터키처럼.
작성 : 2016년 11월 16일(수) 12:11
게시 : 2016년 11월 18일(금) 10:33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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