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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해 칼럼)믿겨지지 않는 가을은 문득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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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중략>/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 날’을 간절히 바라기라도 했듯 도무지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폭염께서 하룻밤을 자고 난후 온데 간데 없어졌다.
그러고도 며칠을 지났어도 올여름이 얼마나 위대했었는지 좀처럼 가을이 믿어지지 않는다. 한 달 가까이나 폭염이 이어지고 서울만 해도 열대야가 32일 동안 발생했을 정도니 문득 찾아온 가을 손님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폭염과 열대야가 극심했던 1994년에 폭염 29일, 열대야 36일을 기록한 이후로는 겪지 못했던 위대한 여름은 거짓말 같게도 8월23일 처서(處暑)를 지나자마자 26일 밤부터 갑자기 쌀쌀해지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더위가 남긴 상처는 너무 컸다. 전국적으로 2000명 이상의 온열환자가 발생해 17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와 가축이 폭염에 못 이겨 떼죽음을 당했다. 또 10여년간 종적을 감췄던 콜레라가 다시 나타나고 식중독까지 급증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게다가 무더위에 가뭄까지 길게 이어져 뜨거워진 수온으로 인해 발생한 녹조 현상으로 일부지역에서는 식수공급도 어려움을 겪는 등 폭염은 가셨지만 뒤처리할 일이 태산이다.
얼마나 지쳤으면 지금도 여름에 찌든 냄새가 날 정도다. 그러나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듯 제아무리 극성스럽던 폭염이라 한들 세월 앞에서는 가시지 않고 못배기는 법. 그것도 하룻 밤새 언제그랬냐 하며 떠나갔으니 이 또한 지독했던 한여름의 추억이려니 하련다.
가을이다. 올 가을은 고난의 폭염 행군을 이겨내며 고개를 들이 밀었기에 안아주고 싶도록 반갑다. 그토록 목청이 터져라 맴맴거리던 매미소리도 잠잠해지고 그틈바구니에 귀뚜라미가 땅에서 기여나와 가을을 맞이하고 하늘은 쪽빛에 뭉게구름타고 금방이라도 산봉우리에 닿을 듯 청명하다 .힘들고 지치게 했던 여름을 지나와서 그런지 올 가을 문턱이 괜하게 쓸쓸하기도 하고, 심신을 쉬고 쉽게도 만든다. 녹색이던 나뭇잎이 탈색하는 것도 그렇고 살며시 파고드는 바람도 싱숭생숭하다. 고즈넉한 들판을 바라보노라면 자신을 보는듯한 상념이 와 닿고, 하늘대는 코스모스만 눈에 들어와도 애잔함을 느낀다.
가을이 봄, 여름을 이겨 내고 겨울을 남겨 놓고 있어 저무는 것에 대한 미련이라도 남아서 일까, 아니면 길거리 가로수며 산에, 들에 초록이 힘이 다해서 그럴까, 주름이 늘어나고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엔 지난 삶을 돌이키며 철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봄의 젊음이 있으면 청춘의 여름이 있고 어른스런 가을을 지나면 뒷모습이 느릿한 겨울이 있음이니 그걸 부정해서 뭐하겠는가. 가을은 이래서 주마등 같이 지나가는 가 보다.
가을은 대략 기상학적으로 9월부터 11월 정도까지를 말한다. 대체로 낮최고 기온이 25℃ 이하에서 평균 기온이 10∼15℃로 인체에 미치는 최상의 날씨를 보여 다른 계절에 비해 바깥활동이 많다. ‘하늘이 높으니 말이 살찐다’고 하여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하고, 책읽기에도 최적의 날씨라 해서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기도 한 가을은 남녀의 만남을 전해주는 청첩장이 가장 많이 날아들고 들녘에 심어놓은 곡식이 영글어 알곡을 거두는 결실의 계절이기도 해 사색만큼의 풍성함도 못지않다.
하지만 아직도 지루했던 폭염이 뇌리에 남아 있어서인지 쉽게 맘이 놓이질 않는 것은 왜일까. 이따금 이맘때인 초가을에 집중호우가 내리거나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이 내습하여 추수기에 접어든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기라도 하면 어찌할까하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솔직히 무더위가 저멀리는 가지 않은 것 같은 조바심도 있다. 아무쪼록 신이라도 보살펴주어 청명한 날씨로 연이어지고 오곡백과로 황금빛의 수를 놓아주면 올가을은 더할 나위없다.
며칠이 지나고 나면 가을을 만끽하는 추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이 가을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풍성함 때문이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고 추석날에는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을 풍성하게 제사상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처럼 한자라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것도 가을에나 맛보는 풍경이라 우리네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추석에는 토요일을 포함해 내리 닷새나 연휴로 이어져 조상님께 점수만 잘 따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대박’이다. 이렇게는 못하더라도 이번 추석 연휴에는 탐스러운 밥송이를 따러 나서든, 고즈넉한 메타스퀘어 숲길을 걸으며 피톤치드라도 듬뿍 마셔보든, 지긋지긋한 여름 무더위에 지친 육신을 가을 속에 파묻고 싶다. 그렇게 하고 나서라야 참으로 위대했던 여름을 멀리 쫓아 보내고 애틋하고 신선하게 가을을 맞이할 것 같다.

작성 : 2016년 08월 30일(화) 14:40
게시 : 2016년 08월 31일(수) 10:25


연규해 논설실장 yeungh@ele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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