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 두산중공업 전무
김성원 두산중공업 전무

온통 이란 얘기다. 지난 2월 28~29일 이란 테헤란은 한국 기업인 300여명으로 호텔 방이 동이 나는 등 난리 아닌 난리를 겪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와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에 이어 매경포럼까지 겹치면서 이란에 관심이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대표들은 전원 출동한 형국이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두산중공업도 이란 남부 챠바스 지역에 들어설 대규모 석유화학단지에 전기와 열,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약 6억불상당의 Mokran 프로젝트에 대한 MOA를 체결하기 위해 금번 행사에 대규모 출장단을 파견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2003년부터 10여년간 이란 국영발전설비업체인 MAPNA사에 폐열회수보일러(HRSG) 44기를 제작, 납품 및 기술을 이전하는 사업관계를 유지해 왔다. 사업 기간중에 미국 주도의 경제 재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오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끝까지 현장 사무소를 유지하면서 한국 직원들이 상주해 마지막 제품납기까지 성실히 사업을 수행했다.

경제 제재기간동안 이란과의 사업 수행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두산중공업 주식을 보유한 미국, 유럽등의 연기금펀드들은 매년 물밑에서 이란과의 사업을 조기에 종료할 것을 압박해 왔다. 그때마다 우리가 이란에 공급하는 설비는 군사용으로 결코 전용되지 않으며, 이란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설비인만큼 경제 재제의 취지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해 가면서 간신히 사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일까. 경제 재제가 해제되기에 앞서 무역협회를 중심으로 한국 경제사절단이 지난해 8월 테헤란을 방문했을 때 이란 발전설비업계의 많은 요청으로 두산중공업은 유력한 이란 기업들과 연쇄적인 사업 상담을 하게 됐고, 결국 중국 EPC 기업들의 집요한 추격을 뿌리치고 Mokran 프로젝트를 수의 계약형식으로 추진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비단 두산중공업만이 아니다. 어려운 경제 제재 기간동안 굳건히 이란 현장을 지켰던 대림, 삼성 등 한국 건설업계에 대한 이란 정부와 산업계의 시선은 매우 우호적이다.

이란이 본격적으로 경제 재건에 나설 경우 한국 건설업계는 많은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이처럼 오랜 기간 쌓아 온 신뢰가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저유가 국면에서 전통적 달러박스였던 사우디등 중동시장의 침체로 한국 건설업계가 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 뾰족한 대체 시장이 보이지 않는 현 시점에서 이란은 거의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인다. 이란에 물밀 듯이 들어가고자 하는 우리 기업들의 간절한 바람이 피부로 느껴진다.

근데, 과연 그럴까?

필자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좀 더 객관적으로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필자가 만난 이란 기업들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경제 제재 해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 있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돈 보따리를 들고 오는 세계 각국의 기업들을 만나면서 이란의 몸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올랐다. 현지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테헤란 방문이후 인프라 프로젝트의 절반은 이미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한편, 이란 내부적으로는 오랜 경제 제재로 자본축적이 안된 상황에서 해외 기업들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금융을 수반해야 하는 것이 필수 조건으로 돼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의 원활한 수주를 위해서는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은 물론 산업은행 등의 정책금융이 대규모로 요구되는데, 이란의 현재 신용도로는 자금 제공에 한계가 있어 프로젝트 발주를 마냥 반가워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진정 이란이 우리의 새로운 엘도라도가 되기 위해서는 업계의 정교한 프로젝트 선정 및 냉정한 사업적 접근과 함께 정부와 공적 금융기관의 선제적, 전폭적 금융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이 국교수립이후 최초로 인천-테헤란 직항노선을 열었지만 그 비행기를 타고 실제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기에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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