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전기공사 도제학교 추진...취업.인성 다 잡는다

휘경공고 전기제어과 3학년 박지훈 군이 지난 16일 전기공사협회 야외실습장에서 가공배선 교육을 받고 있다.
휘경공고 전기제어과 3학년 박지훈 군이 지난 16일 전기공사협회 야외실습장에서 가공배선 교육을 받고 있다.

(편집자주)전국에 전기·에너지 관련 학과를 개설한 특성화·마이스터 고등학교는 모두 96곳이다. 그 중 마이스터고는 14곳이다. 본지는 대한민국 뿌리산업의 밑거름 역할을 하는 특성화·마이스터고를 소개하고, 미래 전력·에너지 산업을 이끌어갈 청년인재를 발굴하고자 3월부터 ‘1020 희망 사다리’ 연중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전기공사 도제학교 추진…학생들에게 양질의 일자리 제공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이 지역은 조선시대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묘, 휘경원에서 유래했다.

1998년 이곳 지역 이름을 딴 휘경공업고등학교가 6개과 14학급으로 처음 문을 열고 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동대문구 유일의 공립 공업고등학교다. 2010년 휘경공고는 ‘자동차특성화 고등학교’로 지정되며 전환기을 맞았다. 현재는 총 793명의 재학생이 자동차금형과, 자동차생산과, 자동차과, 전기제어과, 디지털전자과, 건설교통과에서 미래 뿌리산업의 주역이 될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추교수 교장<사진>이 취임하면서 휘경공고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올해 국내 처음으로 전기공사 분야의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에 도전하면서 다시 한 번 변곡점에 서게 된 것이다. 추 교장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이론과 현장실무를 배우는 한국형 도제교육 모델로 전기공사를 택했다.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는 고교단계의 일학습병행제 교육으로 독일과 스위스의 ‘도제식 훈련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춰 설계한 새로운 직업교육 제도다.

학교에서 이론 및 기초실습 교육을 받고 기업에서 현장교육 훈련을 받는 교육과정으로 진행된다. 1학년 2학기에 학생을 선발해 2∼3학년 총 2년간 교육이 진행된다.

학생입장에서는 전문기술을 습득하고 다양한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기업에선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인재를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공업계 특성화고의 학습현실을 볼 때 산업 현장과의 괴리감이 존재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교육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불일치가 발생하죠. 이러한 차이를 줄이고, 학생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선취업 후(대학)진학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도제학교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추 교장은 공업고등학교에서만 30년을 보낸 베테랑 교육자다. 그가 교육현장에서 느낀 한계가 도제학교 추진으로 나타난 셈이다.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해방돼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도제교육의 핵심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추 교장은 “전기공사 분야는 다른 산업과 비교해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훗날 스타트업을 고려할 때 장점이 크다”며 “휘경공고를 도제 거점학교로 지정받기 위해 전기공사협회와 협력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기공사 분야는 배우긴 어렵지만 한 번 습득하면 평생직장으로 손색이 없고, 창업 시 상대적으로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는 점을 눈여겨 본 것이다.

현재 휘경공고 전기제어과는 학년당 2학급으로, 총 146명의 학생이 미래의 ‘전기 명장’이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이 학교 3학년 학생들이 전기공사협회에서 옥외배선 현장실습에 나서기도 했다.

▲전기제어과 취업 특화 프로젝트 운영…‘인성’교육 강조

전기에너지 관리와 제어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전기 분야에 있어 종래의 조명, 전열기, 전동기 등 각종 전기설비의 단순 제어에서 벗어나 컴퓨터와 마이크로프로세소가 융합된 고급 제어 기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휘경공고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전기제어과에서 기존의 전력선 시설 설치, 보수, 관리에 대한 기술을 기반으로 각종 네트워크 설비, PLC 등을 이용한 자동제어 설비, 전기기기, 내선공사 등에 대한 이론 및 실무 중심의 교과 과정을 편성, 우수한 전기기술인을 양성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특성화고의 이점을 살려 전기자동차 같은 분야에 대한 교과도 운영하고 있다.

또 이 학교는 중소기업의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산학 맞춤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전기설비 제작, 방수설계 시공, 금형제작, 기계설계가공, 자동차 정비 등 8개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고, 학기와 방학 기간에도 맞춤형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휘경공고의 지난해 취업률은 68.6%며 이 중 97%가 중소기업을 선택했다. 유능한 청년 인재들이 중소기업에 포진할수록 산업 건강성이 강화된다는 추 교장의 지론이 반영된 대목이다.

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취업의 달인’ 프로젝트도 휘경공고만의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취업 포트폴리오를 운영, 구직역량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또 정기적으로 산업체 인사를 초청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갖고,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 취업 마인드를 제고한다.

추 교장은 “취업률에 연연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학생이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고, 비전을 설계할 수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며 “2학년 때부터 근로자 신분으로 기업현장에서 일하는 만큼 학생들의 인성 함양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성화된 교육으로 전문 기술을 배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 교장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강조하는 것은 ‘인성’이다. 휘경공고만의 차별화된 인성교육프로그램(힐링클래스)은 인근에서도 유명하다. 3단계로 이뤄진 힐링클래스는 상담과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이 자아 정체감을 정립하고, 스스로 일생생활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학생들은 책읽기의 생활화와 창의력을 키우는 ‘독서토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랑의 배달부’, 학부모와 함께하는 ‘봉사활동’, 여행을 통한 자아 찾기 ‘동행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공감능력과 대인관계, 공동체 의식을 배운다.

유종기 대창일렉컴 대표(왼쪽)는 최인호 사원(휘경공고 졸업생)의 전폭적인 후원자다. 전기명장이 되고자 하는 최인호 군의 꿈이 대창일렉컴에서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종기 대창일렉컴 대표(왼쪽)는 최인호 사원(휘경공고 졸업생)의 전폭적인 후원자다. 전기명장이 되고자 하는 최인호 군의 꿈이 대창일렉컴에서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취업 연계 모범사례, 대창일렉컴에서 찾다

“휘경공고 학생들, 모두 탐나는 인재”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대창일렉컴(대표 유종기)은 휘경공고 전기제어과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고 있는 회사로, 백색가전과 등기구용 전선을 생산한다. 연평균 8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며, 국내 최초로 PVC 튜브 UL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휘경공고와는 2012년부터 중소기업 특성화고 인력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인연을 맺어왔다. 취업 연계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어 휘경공고 출신만 7명이 일하고 있다.

최인호 군(23)은 그 중에서 고참격이다. 3학년 때 대창일렉컴으로 현장실습을 오게 됐고, 병역특례를 위해 졸업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 군은 “학교와 연계된 취업프로그램을 통해 대창일렉컴을 알게 됐고,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회사동료, 학교 동문들의 도움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안정된 직장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돼 친구들이 부러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군은 입사 때부터 전선 파트에서 일하다 지난해 이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PVC 튜브 생산팀으로 옮겼다. 그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창업이다.

“제가 원하는 직무를 회사가 함께 고민하고 찾아준다는 게 중소기업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 현실에서 주5일 근무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곳에선 주말이 보장되고, 기숙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제 커리어의 첫걸음을 대창일렉컴에서 시작하게 돼 행복합니다.”

회사 내에서 최 군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병역특례 이후에도 계속해서 붙잡아 두고 싶다는 게 유종기 대창일렉컴 대표의 전언이다.

유 대표는 “최인호 사원뿐만 아니라 휘경공고 학생들 모두가 탐나는 인재”라며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꾸준히 휘경공고 학생을 영입했고, 그 중 1명은 병역특례를 마치고 정식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이어 “그전까지 외국인과 고령자, 주부 등을 채용했지만 생산성과 인건비 측면에서 청년인재만 못하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젊은 친구들에게 채용과 기술습득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휘경공업고등학교 추교수 교장
휘경공업고등학교 추교수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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