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 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석환 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미국에 러시모어라는 이름의 산이 있는데, 경관이 수려하지는 않지만 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산이다.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은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 받는 4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속칭 ‘큰 바위 얼굴’ 때문이다.

이렇게 존경받는 대통령들은 평생 정치만 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어떤 다른 일도 했을까? 전공은 무엇이었을까? 등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워싱턴은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토지 측량 기술을 배워서 측량기사로 6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3대 대통령이었던 제퍼슨은 건축가로도 활동했는데, 버지니아 주 의사당, 프랑스 공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제퍼슨은 특허법을 제정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16대 대통령 링컨은 유년기에 뱃사공, 가게 점원, 토지 측량 등 다양한 일을 했는데, 배가 모래톱에 걸렸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하고 발명 특허를 취득한 적이 있다.

26대 대통령 루즈벨트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성적이 최우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의 농장 경영을 몇 년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야기하면 뉴딜 정책으로 잘 알려진 루즈벨트 대통령은 32대 대통령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이고, 러시모어에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은 26 대 대통령 테어도어 루즈벨트이다. 테어도어는 프랭클린의 숙부인데,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것을 인정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은 대통령이므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좋아할 인물이 아니다.

어쨌든 미국의 존경받는 대통령 네 명은 모두 이공계 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는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정치가들 중에도 이공계 학교 출신이거나 이공계의 일을 한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나라의 전임 대통령 중 이공계 출신은 없다. 현직 대통령이 이공계 대학을 다녔지만 이공계 분야에서 일을 한 적은 없다.

우리나라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공계 학교 출신 또는 이공계의 일을 하던 사람이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육 과정 자체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은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져 있고 배우는 내용이 다르다. 배우는 내용이 다른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구분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자료를 볼 때 글자는 문과 출신이 읽고 숫자는 이과 출신이 읽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교육은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보다는 시험 성적을 잘 받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기 때문에 공부하기 어려운 과학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닐 수 있다. 이과를 선택한 사람은 과학기술적인 지식을 많이 암기해 알고 있겠지만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이든 아니든 간에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과학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이 중요한 과학기술을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부 뜻있는 과학자, 공학자들은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널리 알리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린이 과학 교실’과 같은 것이다. 일반인에게 과학 기술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왠지 “소통이 안 돼 소통이... 얘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정으로 소통을 원한다면 자신부터 남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린이 과학 교실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자 자신이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필리버스터가 뭔지 게리맨더링이 뭔지를 알아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과학 기술,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회에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나는 지금 이 사회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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