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백운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유난히 덥고 변덕스러웠던 지난 여름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 곳곳은 과거 경험하지 못했던 ‘이상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일반적인 기후대(climatic zone)와 계절의 특성을 뒤흔드는 기후변화에 직면하면서 청정에너지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국가발전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표방한 이후 박근혜 정부도 다양한 에너지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에너지믹스 관련 정책, 신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 RPS (Renewable Energy Portfolio Standard: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 제도 등이 과연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은 에너지믹스 정책이다. 에너지믹스 정책이란 여러 종류의 발전 에너지원을 적절히 배분해 다양한 에너지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는 국가차원의 에너지 정책이다.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우리의 경우 에너지믹스 정책은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를 모두 아우르는 국가의 근본 정책이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추진하는 에너지믹스는 CO2 감축을 위한 청정에너지의 비중 확대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너지 기본계획과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현재 청정에너지의 비중이 3.52%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국가목표는 매우 낮게 설정돼 있다. 2030년으로 예정됐던 11%의 청정에너지 보급 목표도 2035년까지로 그 시한이 늦춰졌으며 이마저도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시행된 RPS제도는 발전설비 용량 500MW 이상의 발전 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최근 정부는 2012년 1월부터 도입했던 이 정책에 대하여 이행 실적을 평가했는데 그 결과 13개 공급 의무사들의 RPS 이행율이 70%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2013년의 RPS 이행율인 64.7%, 67.2%과 비교하면 다소 증가한 수치지만 실제는 각 발전사들이 우드펠릿 등의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혼소 발전 방식으로 RPS 이행실적을 인위적으로 부풀린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실질적인 RPS 이행율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한 우리나라 발전량의 86%를 차지하는 발전 6사의 경우 부채비율을 낮추어야 하는 기재부 공기업 경영평가 지침 때문에 수익성이 불투명한 신재생에너지 신규투자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이 때문에 각 발전사들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투자보다는 과징금을 부담하더라도 현 설비를 유지하는 고육지책의 경영방침을 따르는 실정이다. 이처럼 근본 해결책이 아닌 위기 모면용의 임시방편으로는 미래 신재생에너지 기술 산업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각 선진국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저하를 위해 새로운 청정에너지의 발굴뿐만 아니라 기존의 화력발전 시설을 축소하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탈 석탄’ 체제를 선언하며 석탄 광물의 에너지원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석탄 사용량(2.29tce)은 전 세계 5위이다. 이는 석탄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중국(2.07tce), 미국(1.93tce) 보다 월등하며, OECD 평균치인 1.13tce의 2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23년까지 현재 화력발전 설비의 66%에 달하는 규모의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 가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세계 에너지발전 산업의 새로운 변화와 너무도 동떨어진 정책이다.

물론 요즘처럼 유가 하락이 지속되고 예비전력이 충분히 확보된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의 확대는 부담스러운 정책이다. 그러나 청정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신기술 산업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에너지원과 전력 수급의 여유가 있는 지금이야말로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를 확대할 적기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협이 인류의 생존문제로 다가오는 현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는 단순한 에너지 공급원을 넘어서 향후 국가산업을 선도할 새로운 산업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IoT 기술과 융합돼 고효율, 환경 친화적인 신 산업기술에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산업발전은 미국, 유럽의 선진국 모델을 숨 가쁘게 추격하면서 이뤄졌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 에너지 신사업분야를 주도하고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신에너지 원천기술을 앞서 개발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에너지 문제는 모든 국가가 직면한 중차대한 과제인 동시에 미래 사회를 견인할 새로운 유망산업분야이다. 미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국가전략 수립을 통해 대한민국이 에너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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