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 자동차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탄소 중립에 힘입어 친환경 전기차 전성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있다. 배터리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과 ‘충전’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특히 충전은 전기차의 미래를 판가름 할 사안이다.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중형급 LPG 밴을 몰고 다닐 때다. 잘 다니다가도 가스 충전율이 30%를 밑돌면 가스가 떨어질까 불안해 충전소부터 찾았다. 전기차와 비교하니 이는 배부른 소리였다. 전기차는 완속 충전(7KW) 기준으로 완충까지 9시간 8분이 걸린다. 용량이 2배 가까이 높은 급속 충전(13KW)도 최소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운 나쁘면 충전으로 반나절 이상 허비해야 한다.

배터리 회사들은 충전시간 단축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또한, 충전시간 단축으로 인한 배터리 성능과 수명 저하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어떤 기업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고 치자. 스마트폰 배터리처럼 필요할 때마다 배터리를 재깍재깍 바꿔주고, 배터리 가격만큼 전기차 가격을 깎아줄 테니 매달 2~3만원만 내라고. 전기차 이용자 가운데 이를 거절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 이와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 배터리 교환 서비스(BSS, Battery Swap Service)다.

BSS는 글로벌 전기차 업계 강자 테슬라도 사업 초기부터 고민했던 문제다. 테슬라는 의욕적으로 개발을 추진하다가 두 가지 난관과 맞닥뜨렸다. 첫 번째는 심리적 문제. 대다수 사용자는 ‘내’ 배터리를 남과 바꾸고 싶지 않아 했다. 두 번째는 기술 진보. 배터리 고용량화와 충전 기술의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이런 탓에 경제력 있는 소비자는 BSS보다 기존 방식을 선호했고, 테슬라는 결국 독자적 충전 방식을 선택했다.

그런데 테슬라가 간과한 점이 있다. 사용자가 주기적으로 바뀌며 반복 운행되는 택시, 버스 등의 여객·운송 시장에서 BSS는 여전히 매력적 서비스라는 것이다. 특히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에서 가장 많은 비중(30~40%)을 차지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구독형으로 대체되면 가격 하락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BSS 분야 투자가 활발한 중국 시장은 다른 나라보다 전기차 가격이 훨씬 저렴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덕에 중국은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BSS의 활성화는 배터리 수명, 성능 저하 문제 등에서 해방됨을 뜻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 충전소와 BSS를 함께 운영하면서 지능형 전력망의 가능성도 가늠해볼 수 있다. BSS 는 전력 수급 안정화 등을 위한 분산 전원의 인프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인도는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전기차 충전 중 공급이 끊어지는 경우가 잦다. 전력 공급이 원활할 때 배터리를 충전해놨다가 필요시 교체하는 방식이 선호되는 이유다. 이렇게 전력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에 전기차와 BSS를 패키지로 수출한다면 어떨까.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정리하면 BSS는 단지 충전 서비스의 대체재가 아닌, 새 수익 모델로 접근하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사업자는 BSS를 통해 배터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전기차를 구매 하면서 충전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보조금을 전기차 보급·확산의 '당근'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무한정 지급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 BSS는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 금액이 빠지는 것은 보조금 지급 이상의 역할을 한다.

사업자에게는 BSS 스테이션의 활용 폭을 넓혀 수익 창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BSS에 있는 배터리를 활용하여 전력 직거래 등을 허용하는 것 등이다.

다만 BSS 상용화까지는 극복해야 할 부분도 있다. 대표적 문제가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 제조사 간 규격(크기, 형태, 전압, 전원 커넥터 등) 표준화다. 비용 기준을 세우기 위해 배터리 하루 사용량, 특정 시간별 교체량, 전력 소모량 등의 실증 데이터도 필요하다. 배터리 화재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전반적으로 사업 타당성을 따져볼 사전 연구가 필요하다.

BSS는 어마어마한 시장 잠재력을 품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전력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이동식 저장장치 형태의 전력 공급 플랫폼으로써도 활용 가치가 높다.

정부는 지난 7월 2차전지 신산업(대여 및 교체 포함) 관련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선언했다.

BSS라는 ‘미래의 길’을 열기 위해 전기 업계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글_김종성 한국전기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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