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국가들이 수립한 전략과 국제기구가 제시한 로드맵에서와 같이 한국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도 재생 발전원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시나리오별 경로 차이는 있으나 어느 경로가 최적일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IEA 보고서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서 전체 기술의 40%가 아직 실용화 되지 않은 미래의 에너지 기술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더불어 에너지 기술의 진보를 담보하기 위해 정책의 틀과 혁신 전략을 공고히 해 미래 기술의 완성도를 높일 것을 권고했다.

최종 에너지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가별로 적게는 45%에서 많게는 80%까지 될 것이라 한다. 이런 점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시나리오에 뒤이어 전기화 비중의 전망이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10월에 발표될 정부 최종안에 우리나라 전기화 규모 전망치가 제시될 것으로 보이나, 이에 앞서 지난 7월 개최된 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분석가들은 전기화 수요와 재생발전원 증가가 현재의 전력망 계획 패러다임으로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 밝혔다. 또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목표 전망치를 수용하려면 전력망을 개혁적으로 혁신하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력망 혁신은 전력계통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제고하기 위해 혁신적으로 송배전설비 투자를 늘리면 달성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경로상의 어느 시점에서든 물 흐르듯 안정하게 전기공급을 보장하는 전력망 신뢰도 체계와 망 운영 기술이 따라 주어야 가능하다. 신뢰도 체계에 반하는 대형 발전원 입지계획이나, 신규 송전선로의 준공 지연, 제도가 쫓아 가기 힘든 제주의 재생발전원 증가속도와 같은 문제들이 현재 전력망에 안정한 전기 공급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처럼 에너지 기술의 불확실성이 전력망에 미치는 변화가 예측 가능하지 못하면 탄소중립 목표는 허상이 될 것이며, 이는 필히 정책 신뢰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전력망 또한 의제에 포함해, 미래 기술의 검증과 상용화 가능시기 등 전력망 혁신에 필수적인 사항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이 선행돼야 미래 기술의 불확실성이 전력망 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고 전력망의 예측 가능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앞으로 있을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부터 반영될 것이다. 9차 전기본은 계획상의 최종연도인 2034년까지 재생발전원 발전비율을 22%로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했고, 이에 필요한 유연성 자원 2.8GW와 계통안정화 설비 1.4GW를 설계했다. 반면,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35년 재생발전원 발전비율 목표치를 50%를 상회하게 제시했다. 9차 전기본 계획을 이행하는 9차 송변전설비계획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재생발전원 목표 비율이 두배 넘게 증가하게 되면 이를 위한 송배전설비와, 유연성 자원, 그리고 계통안정화 설비 규모의 증가폭이 차기 송변전설비 계획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9차 계획에서 논란이 있었던 재생발전원계획과 송변전설비계획 사이의 정합성 문제가 차기 계획에서 더 심화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얼마 전 개최된 글로벌 에너지 분야 리더들이 참석하는 EPRI 하계 세미나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전력망 안정성, 회복 탄력성, 경제성을 갖춘 혁신적인 방안 모색”을 주된 논의주제로 삼았다. 해당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재생발전원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명백히 예상되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No Regrets (후회 없는) 투자”로 명시하였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3안과 같이 석탄과 LNG 없이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는 전력공급시스템은 이론적, 계산상으로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전력수급 불안정성, 유연성 자원 확보 비용 등은 아직 분석이 가능하지 않은 영역의 문제이다. 어떤 시나리오로 전개되든 간에, 그리고 2035년이든 2050년이든 간에, 언제 어디서나 전기가 물 흐르듯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흐르게 하는 것은 전력망의 존재 이유다.

이병준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아이오와주립대 졸업 ▲대한전기학회 부회장 ▲9차 송변전설비계획위원장 ▲전력거래소 계통평가위원장 ▲전기협회 전기전문위원장 ▲전기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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