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자총과 2대 주주 한전 간 지분매입 가격과 방식 두고 줄다리기 길어져
6개월 사이 한전산업 주가 3~4배 상승…대선국면으로 국회 관심 줄어 원동력 하락

한전산업개발 본사 전경.
한전산업개발 본사 전경.

[전기신문 윤대원 기자] 한전산업개발의 재공영화(공공기관화)가 오리무중에 빠졌다.

대주주인 자유총연맹과 2대 주주인 한전 사이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길어지는 사이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탓이다.

지난 1월 한전과 발전공기업을 대표해 인수작업을 맡은 한국중부발전이 ‘한전·발전5사 공동 한전산업개발 지분인수 자문 용역’을 위한 입찰을 실시하고, 한전산업 지분인수 절차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대주주인 자총 측에서 해당 입찰공고를 두고 발전회사가 아닌 한전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중지된 바 있다.

입찰이 중단된 이후에도 지루한 줄다리기가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자총 측은 한전이 먼저 매입가격을 제시하라는 입장이고, 한전은 기업 실사도 거치지 않고 가격을 책정할 수 없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당초 한전산업의 재공영화가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다양한 변수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전산업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 7월 26일 기준 한전산업 주가는 1만4300원을 찍으며 장을 닫았다. 지난 7월 5일에는 1만8600원까지 치솟았다. 입찰참가 접수를 시작한 1월 21일 기준 한전산업 종가가 4415원이었던 것과 비교해 3~4배 이상 뛰었다.

주가 상승을 통해 자총 측에서는 높은 가격을 제시할 명분이 생겼고, 한전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비용을 들여 한전산업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또 양측이 대립하는 사이 재공영화에 적극적이던 정치권도 대선 정국으로 소극적으로 돌아선 점도 변수가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더불어 위험의 외주화를 차단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사실상 국회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 이뤄졌다”며 “이번 한전산업 재공영화 역시 여당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실제 한전산업의 재공영화 문제를 두고 최근 일부 의원들이 실무협의회와 논의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고 지난해 국감에서도 자총을 두고 한전산업 공영화에 적극 협조해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국회의 관심이 온통 대선후보 선정 등 이슈에 집중되면서 한전산업의 재공영화는 뒷전에 밀려 있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정책을 추진할 원동력이 줄어든 셈이다.

이런 이유로 자총과 한전 모두 협상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총 입장에서는 애초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던 한전산업의 지분을 헐값에 무리해 매각할 이유가 없고, 한전 역시 자의로 지분 매입에 나섰던 게 아닌 만큼 매입 과정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전이 자총을 만족시킬 만한 매입가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논의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산업은 그동안 자총에 배당한 금액을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한전산업 노조가 내놓은 자료에서 자총이 해마다 적지 않은 배당금을 통해 투자 대비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자총이 H그룹컨소시엄 측에 한전산업 지분 31%를 매각하려는 과정에서도 노조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당시 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총은 2003년 한전이 보유한 한전산업 지분 51%를 665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투입된 자총 자본은 실제로는 6억6000만원에 불과했다는 게 당시 노조의 주장이다. 나머지 금액은 수의계약을 담보로 투자·펀드 등 재무적 투자를 받아 충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한전산업의 주식이 상장된 2010년 전까지 해마다 40억원에서 60억원가량을 자총에 배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총은 2006년 서울 중구 흥인동 사옥을 1500억원에 처분, 임차인들에게 지불한 보증금을 제외하고 남은 매각 차익을 모두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2006년 자총이 가져간 배당금은 260억원이었다.

자료가 공개된 2012년 기준으로 2003년부터 9년 동안 자총의 배당금만 합해도 618억원 정도다. 지난 2010년 한전산업 상장 시 시장에 내놓은 20% 지분의 매각대금인 358억6000만원을 합하면 977억원에 달한다.

한전산업 관계자는 “대주주인 자총과 2대 주주인 한전의 협상이 마무리돼야 한전산업도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겠나”라며 “다만 최근 한전산업 주가 상승과 대선국면으로 인한 국회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직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산업 재공영화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진행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2018년 김용균 씨 사망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전면 차단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아 추진됐다.

발전소 운전 등 업무를 수행하는 한전산업 역시 위험의 외주화 차단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 노·사·전위원회는 1년여간의 논의 끝에 한전 측에 한전산업을 자회사로 재편입시켜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 2월 발송했다.

이 작업이 순조롭게 추진된다면 2003년 한전의 지분 매각 이후 18년 만에 재공영화에 성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총과 한전의 기싸움이 이어지면서 재공영화 성사 여부조차 알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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