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계시별 요금체계 적용 없이 한전과 모자분리 계약
제주 B 아파트 주민, 부하구간 구별 없는 1/N로 요금납부 불만
“의무화 지키느라 어쩔 수 없어…운영사 선정 때까지 참아야”
충전사 수익구조 마련 없이 보급 일변도 정책 ‘문제 있다’ 비판도

[전기신문 오철 기자] #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 신축 아파트에 사는 A 씨는 최근 전기차 충전요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충전요금을 저렴하게 사용하려고 야간에만 충전했던 A 씨의 전기차 충전요금과 낮 시간 충전도 서슴지 않던 B 씨의 충전요금이 똑같았던 것. 알아보니 건설업체가 설치 의무화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충전 운영 업체 없이 한전과 통으로 모자분리 계약을 했고 A 씨는 지금까지 계시별 요금제와 상관없이 충전요금을 내고 있었다.

신축 건물에 이어 기축 아파트도 전기차 충전기 설치 의무화가 결정된 가운데 ‘밀어붙이기식’ 충전기 보급 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기 의무화’에 따라 건축된 제주도의 B 아파트가 충전 요금을 계시별 요금제로 적용하지 않고 있었다. 원래대로면 전기차 충전요금은 부하에 따라 예비율이 높은 시간(구간)에는 충전료가 저렴하고 낮은 시간에는 충전료가 비싸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 전기차 충전기 사용자는 경부하, 중부하, 최대부하 때 요금과 무관하게 1/N로 충전요금을 내온 것. 문제는 다수의 건설사들도 이 같은 방식으로 한전과 모자분리 계약을 하고 있었다.

충전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가 충전기 설치 의무화에 따라 아파트값 부풀리기도 좋으니 관리는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충전기를 설치했다”며 “한전과 처음부터 충전기 운영사를 포함하지 않고 계약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행태는 2019년 계량기 고장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난방비를 한푼도 안 낸 아파트 거주자들의 비리를 폭로한 ‘난방열사’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꼼수를 부린 거주민이 없다는 것은 다르나 ‘사용량과 무관하게 요금을 부과했다’는 점과 ‘불투명하게 관리비를 운영했다’는 점이 일치한다. 제주 B 아파트 주민들도 아파트 관리소에 불만을 제기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건설사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전기차 충전기를 꼭 설치해야 한다고 해서 충전기는 구축했는데 충전 운영사까지는 건설사 마음대로 선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충전 운영서비스 업체는 주민 대표자 회의에서 결정한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신축 아파트라 대표자 회의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인데 정부가 충전기를 꼭 구축해야 하니 일단 모자분리 계약을 한 것”이라며 “한전과 (충전)사업자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충전기를 입주민만 쓴다는 조건과 수익을 한전에 전부 낸다는 조건으로 계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주민 대표자 회의가 충전 운영 업체를 선정하면 해결되는 문제”라며 “그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충전기 보급 일변도 정책이 충전 인프라 생태계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일 산업부는 내년부터 신축이 아닌 기축 아파트도 일정 규모 이상으로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했다.

기축 아파트는 배전용량 증설이 신축보다 까다로워 ‘과금형 콘센트’ 등의 제품이 인기를 끌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배전 용량이 적으면 충전기 운영사의 수익은 줄어들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또 보조금 사업을 제외한 아파트는 충전기를 구축해도 운영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충전 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수익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보급만 생각하는 정책은 충전 업계를 보조금 늪으로 빠트리는 것”이라며 “충전 운영사가 고객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게 충전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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