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대비하는 후보자의 조직을 캠프(camp)라고 부른다. 라틴어로 평야, 들판을 뜻하는 '캄푸스(campus)'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로 캠페인(campaign)이 있다. 정치적, 사회적, 상업적 목적으로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벌이는 일종의 운동을 말하는데 17세기 중반에 야전(野戰)이라는 뜻으로 쓰던 군사용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200여 일 앞두고 언론은 각 후보 캠프의 분주한 동향을 전하느라 바쁘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통령선거의 선거기간은 선거일까지 23일이지만,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선거일 전 240일 동안에도 제한적으로나마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보통 선거 캠프는 그보다 한참 전부터 먼저 꾸려져서 활동하게 된다. 후보가 출마 결심을 굳히기까지는 주로 물밑에서 측근이나 관계자들이 먼저 주변 상황과 여건을 살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여러 준비를 하다가 대외적으로 출사표(出師表)를 던지게 되면 사무실을 개소하고 공식적으로 캠프를 출범시킨다.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려면 필요한 캠프의 규모도 상당하다. 사무실을 유지하는 데만도 비용이 만만치 않고,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정책, 조직, 일정, 수행, 공보 등 여러 부문마다 늘 일손이 부족하다. 대부분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데 캠프에 합류해서 활동하게 된 경로나 사정도 다들 제각각이다. 후보가 삼고초려 끝에 어렵사리 모셔온 교수나 박사,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취업 준비 중이거나 복학을 기다리면서 사회 경험 삼아 일하는 청년도 많다. 국회의원 보좌진이나 당직자가 파견되어 일하기도 하고, 선거에 공헌하고 인맥을 다져서 정치권 진출이나 취업 기회를 잡기 위해 캠프에 나오는 정치 지망생도 흔하다.

캠프는 늘 어수선하고 어색하다. 선거 준비라는 비교적 단기간의 활동을 목적으로 꾸려진 임시 조직인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무슨 이유에선가 누군가 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다양한 배경을 가진 낯선 사람들이 모여 손발을 맞추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업무의 지속성이나 일관성이 아니라 이슈가 터질 때마다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이 중요하다 보니 구성원 개인의 순발력과 개인기, 과감한 판단력이 캠프에서는 훨씬 더 요긴하다. 하지만, 황당한 메시지 사고가 종종 터지는 것도 역시 그 때문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조율을 거친다고는 하지만 지휘 계통도 불명확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 묻기 힘든 조직 구조이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과 주관, 철학까지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말 한 마디도 아 다르고 어 다른 정치판인데 사소하게 여겨 간과하고 넘긴 문구, 표현, ‘워딩’ 하나가 예상치 못했던 지뢰로 터져 선거 전체의 프레임까지 뒤바꿔버리는 사례를 우리는 이미 많이 보았다.

선거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구성원들의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있는 캠프도 많다. 선거 승리, 당선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모였다고 하지만, 그 구성원 개개인들은 제각기 동상이몽이기 때문이다. 선거 이후의 논공행상에 더 관심이 쏠려있거나, 후보 앞에서 눈도장 찍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후보의 ‘심기 경호’ 경쟁에만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적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자면 각종 선거운동은 죄다 이권사업이고, 정책 공약은 앞으로 당선 이후에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다. 그래서 겉으로는 거창한 명분을 놓고 치고박고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저 밥그릇 싸움인 경우도 많다. 캠프의 지배적인 분위기가 ‘염불보다 잿밥’이면 사실 선거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지만, 실제로는 전쟁처럼 치러진다. 당선 아니면 낙선, 결과가 비정하리만치 냉엄하기 때문이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복작복작 하나의 작은 사회를 이루면서 치열하게 선거를 치르게 된다. 후보들끼리 토론하면서 가시 돋힌 설전을 벌이고, 그러다 말실수를 하고, 해명하려고 보도자료를 내면 지지자들은 또 그걸 옹호해주려고 SNS 댓글을 달군다. 이런 열기에 취하다 보면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시나브로 감정이입에 빠지게 된다. 냉정을 유지하면서 객관적으로 판세를 읽어야 할 캠프도 마찬가지라서 과몰입을 경계하기가 쉽지 않다. 실은 더 넓은 의미에서는 공식적 조직으로서의 선거대책본부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형성된 지지자 그룹 전체를 캠프라고 볼 수도 있다. 선거의 최전선에서 민주주의 문화 창달에 앞장서는 모든 캠프 여러분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응원한다.

프로필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졸업(노동법학과)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수료

국회의원 김성태 의원실 비서관(2012-2019)

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2019~)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번역(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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