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모두가 자신의 영역서 ‘안전 지킴이’
실천 없는 말뿐인 안전이 아니라
그에 맞는 행동할 수 있는 조직 문화
시스템 뒷받침될 때 무재해 가능

ABB 코리아 충남 천안공장의 무재해 기록판.
ABB 코리아 충남 천안공장의 무재해 기록판.

[전기신문 양진영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약 반년 앞둔 가운데, 최근 산업 전반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7900일을 앞둔 ABB 코리아의 무재해 기록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무재해 기록의 비밀을 엿보기 위해 ABB 코리아 천안공장을 찾았다.

입구를 지나 출입절차를 거친 후 밖에서 본 천안공장은 다른 회사의 사업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장에 들어서기 전 오른편 사물함에서 안전화를 꺼내 신었다. 귀마개도 비치돼 있었지만 점심시간에 맞춰 찾아간 까닭에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대로(大路)’. 처음 공장에 들어서니 떠오르는 단어다. 이동경로에 그려진 녹색 바닥의 가로는 성인남자가 누워 팔을 뻗어도 남을 정도로 널찍하다. 지게차의 이동을 고려했을 때 좁은 통로는 분명 사고의 원인으로 번질 수 있다. 교차로의 천장에는 반원 형태의 거울을 붙여 어느 각도에서든 다른 경로의 작업자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운영되는 지게차에는 바닥에 조명을 쏘는 ‘블루라이트’가 앞뒤로 장착돼있다. 지게차가 접근하기 전에 멀리에서도 다른 작업자가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명칭은 ‘블루’라이트지만 실제로 바닥에 그려지는 색은 빨간색이다.

노영석 ABB 코리아 안전보건책임자(그룹장)는 “위험요소로 꼽히는 지게차의 앞뒤로 블루라이트를 장착해 코너에서 다른 작업자가 먼저 확인할 수 있다”며 “유럽에서 처음 블루라이트로 통일했지만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겹치며 한국 공장에는 빨간빛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ABB가 자랑하는 로봇암이 제작되는 공정을 만날 수 있다. 작업자가 실제로 일하는 영역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작업구역으로 놓고 이를 펜스로 둘러쌌다. 몇 걸음 옮기지 못하는 좁은 구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컨베이어벨트식 공장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펜스의 출입문에는 문을 열면 로봇이 자동으로 정지되는 인터록을 설치했다.

노영석 ABB 코리아 안전보건책임자(그룹장)가 펜스에 설치된 인터록을 설명하고 있다.
노영석 ABB 코리아 안전보건책임자(그룹장)가 펜스에 설치된 인터록을 설명하고 있다.

노 그룹장은 “2019년부터 법적으로 인터록을 설치하도록 했지만 그 전부터 적용해 온 것”이라고 귀띔했다.

굳이 사고가 난다면 가장 심각할 곳을 물으니 EPC 공정으로 안내됐다.

220볼트를 사용하는 제품에 테스트를 목적으로 1만 볼트를 가하는 곳으로 공장 내부에서도 따로 영역을 분리했다.

구역에 들어서니 천장 위로 복잡한 전선들이 보인다. 이동 중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케이블을 모두 위로 올린 것이다. 구역 내에서도 제품을 두는 곳과 테스트를 실행하는 곳을 다시 칸막이로 나누고 출입문에는 정전기 방지 패드를 설치했다. 전기에 민감한 곳인 만큼 문을 여는 과정에서 스파크가 튀지 않게 하려는 조치다.

설명을 들을수록 안전시설의 디테일이 놀랍다. 단순히 한두 명의 안전담당자가 제안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위험을 적극 어필해야 알 수 있는 부분들이다.

노 그룹장은 직원 모두가 자신의 영역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ABB의 ‘문화’가 뒷받침 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ABB도 이 같은 문화가 사내에 정착되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겪었다. 개인 성과항목으로 매년 2건의 안전사고 예방 활동을 보고하는 것을 지정했다. 심지어 사장까지도 업무영역에서 위험요소를 보고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적용됐지만 안전의식이 높아진 지금은 인센티브 요소로 운영되고 있다.

노 그룹장은 “사업부마다 업무와 업무현장이 다르기 때문에 위험 노출의 종류도 다르다”며 “때문에 현장을 제일 잘 아는 작업자가 직접 자신의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함께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사고로 보고되는 사안들을 보면 ABB 코리아의 안전의식을 엿볼 수 있다.

반복된 노동으로 인해 자주 겪는 생산직군의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사무직이 사무실 캐비닛의 경첩에 손가락을 베인 것도 사고로 보고된다. 이로 인해 전 사무실의 모든 캐비닛을 전수조사하고 교체를 진행하기도 했다.

노 그룹장은 책임자 한명이 아닌 직원 모두가 안전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노 그룹장은 “실천 없는 말뿐인 안전이 아니라 그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조직 문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조직이 다른 경제적인 이유나 다른 가치를 중시하고 사람의 안전을 등한시한다면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