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바이든 대통령 거부권 마감일
영업비밀 침해 거부권 행사 한번도 없어
선택여지 없는 SK, 합의 나설 가능성 높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LG그룹 본사(왼쪽)와 종로에 위치한 SK그룹 본사.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LG그룹 본사(왼쪽)와 종로에 위치한 SK그룹 본사.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2년간 진행된 LG에너지솔루션(LG)과 SK이노베이션(SK)의 배터리 분쟁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제무역위원회(ITC)의 SK 패소 판정을 거부하지 않으면 사실상 SK는 미국에서의 영업활동이 어렵게 돼 천문학적 손실 발생이 불가피하다. 반대로 바이든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SK는 미국 사업을 지속하면서 LG와의 분쟁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SK 배터리 사업의 운명이 바이든의 손끝에 달렸다.

5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미국 ITC의 LG-SK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 최종판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마감 시한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ITC는 지난 2월 10일 최종판결에서 SK가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SK에 최종 패소 판정을 내렸다. ITC는 판결 조치로 SK에 대해 10년간 미국으로 배터리 관련 부품 수입을 금지하도록 명령했다. 다만 이미 공급계약을 맺은 폭스바겐과 포드에 대해 각각 2년, 4년간의 수입금지 유예조치를 허용했다.

행정부 수장인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기관인 ITC의 최종판결에 대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기준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은 판결일로부터 60일 이내에 행사할 수 있어 마감시한은 현지시간으로 이달 11일이다.

업계에서는 SK의 강력한 백악관 로비에도 불구하고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첫 번째 근거는 미국 대통령이 영업비밀 침해 판결에 대해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1975년 이후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총 6번이 있었지만 모두 특허권 침해 판결이었다.

두 번째 근거는 이미 ITC가 판결에서 공공의 이익을 감안했다는 점이다. ITC는 판결에서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해 만들어진 더 저렴한 배터리에 대한 폭스바겐의 선호는 설득력 있는 공공의 이익이 아니다”라며 “구제명령 조정을 통해 포드와 폭스바겐이 전기차 프로그램을 다른 미국 내 공급사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2~4년 유예기간 안에 SK를 대체할 다른 배터리 공급사를 찾으라는 것이다.

4년간 미국 ITC 위원으로 활동한 스콧 키에프(Scott Kieff) 조지아주립대 로스쿨 교수는 국내 매체 더구루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이 (피고의) 투자 우려나 경제적 영향에 근거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없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SK가 마지막까지 강력한 백악관 로비를 펼치고 있어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평가다.

SK는 지난 1월 오바마 정권에서 백악관 에너지·기후환경 디렉터를 역임한 캐롤 브라우너 컨설턴트를 자문으로 영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오바마 정권 법무차관을 지내고 현 정권에서 법무장관 후보로도 거론되는 샐리 예이츠를 자문으로 영입했다. 예이츠는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조지아주에서 2600개 일자리가 위태롭고 미국의 전기차 확대에도 걸림돌이며 관련 산업에서 중국에 뒤처지게 돼 안보에도 저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 통상본부장 출신인 SK이노베이션의 김종훈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김준 총괄사장도 직접 미국으로 가 현지 로비에 동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SK로서는 치명타가 불가피하다. 3조원을 투자한 조지아주 공장에서 ITC 유예조치로 얻은 2~4년간 동안만 영업이 가능하고 이후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조원 규모의 폭스바겐 공급계약 미이행으로 상당한 위약금이 발생할 수 있고 LG와의 민사소송까지 패할 경우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이에 따라 LG와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거부권이 행사된다면 SK로서는 미국 사업 리스크가 사라지므로 한숨을 돌리면서 LG와의 소송을 계속 끌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 SK는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어 ITC 판결에 대해 연방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하고 민사소송에서도 같은 주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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