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사용 급증하는데 잇따른 발전소 가동 중단에 공급량은 줄어
5분 전기요금 1만1000달러, 익일 전기요금 1489.75달러 ‘널뛰기’

미국 텍사스주에 불어닥친 맹추위에 이 지역 발전소의 송전시설, 가스관, 발전설비 등이 꽁꽁 얼었다. 전기요금은 MWh당 9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제공: 블룸버그
미국 텍사스주에 불어닥친 맹추위에 이 지역 발전소의 송전시설, 가스관, 발전설비 등이 꽁꽁 얼었다. 전기요금은 MWh당 9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제공: 블룸버그

[전기신문 정세영 기자] 미국 텍사스를 강타한 한파의 영향으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면서 이 지역 전기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일주일 동안 미국 본토 지역 대부분이 극심한 한파를 겪었다. 특히 텍사스 휴스턴의 기온은 14일 30여년 만에 최저인 영하 18도를 기록하는 등 이례적인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 사용이 급증했고 한파 대비에 소홀했던 발전소들이 잇따라 가동을 멈추면서 텍사스가 최악의 전력난에 빠졌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 16일 보도했다. 발전소 가동중단으로 전력공급량이 줄면서 전기요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텍사스주 휴스턴의 실시간 전기요금 변화. 이 지역 전기요금은 MWh당 9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제공: 블룸버그
텍사스주 휴스턴의 실시간 전기요금 변화. 이 지역 전기요금은 MWh당 9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제공: 블룸버그

14일 텍사스 전력망 운영사(ISO)의 북부 허브에서 5분 전기요금(5-minute power price)이 MWh당 1만1000달러를, 다음날 전기요금(Next-day power price)은 MWh당 1489.75달러를 기록했다. 참고로 지난해 이 허브의 연평균 전기요금은 MWh당 26달러에 불과했다.

이 같은 전기요금 급등은 맹추위에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파로 공급 측면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 최대 셰일 유전지대인 퍼미언 분지(Permian basin)의 유정이 폐쇄되면서 가스·석탄 발전소는 화석연료를 제때 공급받을 수 없었다. 풍력발전 터빈이 얼어붙는 바람에 재생에너지 발전시설도 멈춰 섰다.

텍사스가 독립 전력망을 운용하고 있어 인접한 다른 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지 못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은 광역 전력망을 통해 여러 주가 필요에 따라 전기를 주고받지만 텍사스는 연방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독립 전력망을 운용한다.

이에 따라 텍사스의 발전량은 14일 평소보다 3만4000MW 감소한 4만8000MW를 기록했다. 기대 전력량인 8만2000MW 대비 약 40% 감소한 수치다.

텍사스가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한 전력난에 빠진 것은 지난 2011년 한파로 인해 정전사태를 경험했음에도 이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마이클 웨버 텍사스주립대 교수는 “미국 북동부 지역 발전소는 발전설비 외관을 방한재로 뒤덮는 등 방한 대비를 철저히 한다”며 “텍사스 지역 발전소들은 가스관, 밸브, 압력계 등 송유시설과 발전설비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텍사스 전력망 운영사가 2011년에 정전사태를 경험하고 나서 방한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했지만 의무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텍사스 정전사태…재생E-화석연료 책임 공방

천연가스・석탄・원자력 발전소 결빙이 주원인

텍사스의 대규모 정전은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수준이었지만, 재생에너지 업계와 화석연료 업계는 서로 네 탓 공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7일 미국의 주요 보수 언론은 정전의 원인을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으로 돌렸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인 터커 칼슨도 재생에너지에 정전 책임을 전가하면서 풍력발전에 대해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월스트리저널(WSJ)도 사설에서 “풍력과 태양 에너지가 하루에 24시간, 일주일에 7일간 전력을 제공할 수 없는데도 이들 에너지에 대한 믿음이 커졌기 때문에 전력망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텍사스주 전력망을 운영하는 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는 기자회견에서 정전사태의 원인이 주로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발전소의 고장에 있다고 밝혔다.

이번 한파 속에서 풍력 발전 터빈의 일부가 결빙되기도 했지만 천연가스와 석탄, 원자력 발전의 고장이 재생에너지 고장보다 정전사태에 두 배로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ERCOT 관계자는 블룸버그 통신에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발전소에서 장비 결빙이 정전 사태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논쟁은 이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추위로 수요가 69GW로 치솟았으며, 이 과정에서 풍력터빈이 얼어 12GW 이상이 발전을 못한 것이 정전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전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지만 눈 폭풍과 한파로 연료공급에 문제가 생겨 석탄, 가스, 원자력까지 함께 멈춰선 것이 직접 적인 대규모 정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텍사스 독립 계통・재생E 증가…우리와 닮아

폭염・폭설 대규모 정전 빈번…기후변화 대비

텍사스주에서 생산되는 전체 전력량 4만5000MW 가운데 3만MW가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발전 등 화석연료다.

최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의 주축인 풍력 발전이 전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가량 된다.

텍사스주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폭설에다 영하의 혹한 속에서 전기가 끊긴 주민들이 총 400만명을 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현지 분위기는 텍사스주 전력망 관리자들이 이런 혹한의 날씨를 예상했음에도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는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기후변화로 인한 대규모 정전이 최근 들어 빈번해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캘리포니아 지역은 폭염 때문에 대규모 정전을 겪었다. 예년보다 20℃나 오른 70년 만의 폭염으로 인한 냉방부하 증가로 전력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상수단이었던 가스발전소 한 곳도 불시에 정지된 상황이었다.

캘리포니아주는 냉각수로 인해 해양환경이 오염된다는 이유로 최근 10년간 11GW 규모의 가스발전소를 폐지해 비상시 동원 가능한 가스발전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바람마저 충분히 불지 않아 수천 개의 풍력 발전기도 멈췄다. 태양광이 버텼지만 해질 무렵 냉방부하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생에너지 변동성 문제에 대비해 2019년 이후 대규모로 보급된 ESS를 방전했으나 전력 공급능력이 충분치 않아 비상 상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폭염에 의한 캘리포니아의 정전과 한파와 폭설에 따른 텍사스의 대규모 정전은 고립된 전력계통에 재생에너지가 꾸준히 증가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될 수 있다. 고립된 계통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 간 전력망 연계에 적극 나서는 것은 물론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현재 3%에서 10% 이상으로 증가할 경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극복 방안을 위한 대책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

원동준 인하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SNS에 “재생에너지가 많아지면 기존 발전기들은 가동시간이 줄고 기동 정지가 많아져 일반적으로 불리해지지만 재생에너지가 줄어드는 시간대 발전을 통해 혹은 보조서비스 제공으로 보상을 받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의 대규모 정전은 주요 산업시설도 멈춰 세웠다. 삼성전자, NXP, 인피니온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공장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는 오스틴에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급등한 전기요금 발전사와 기업 ‘희비’

발전사, 이틀 만에 한 해 수입 올려

텍사스 전력난으로 전력공급 여력이 있는 발전사는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텍사스 주전력망을 통해 판매된 전기요금은 급등한 가격과 수요에 100억달러(약 11조원)로 지난 15일 집계됐다. 이에 따라 텍사스주의 가격상한인 MWh당 9000달러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사들이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됐다.

블룸버그NEF의 전력 애널리스트인 니콜라스 스테클러는 “텍사스주의 풍력발전소(100MW 용량)가 그동안 2월에 이틀간 올릴 수 있는 평균 수입이 4만달러였는데, 이번 전력난으로 15일과 16일 이틀간 950만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발전사들이 15일과 16일 단 이틀에 걸쳐 한 해 수입을 상회하는 수준의 수입을 올렸다”고 말했다.

반면에 설비가 얼어붙거나 가스 공급이 차단돼 발전시설을 폐쇄한 발전사의 손해는 막대했다. 전력을 공급할 수 없게 된 소매 공급사는 실시간 시장을 통해 급등한 가격으로 전기요금을 지불, 결과적으로 매입가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로 인해 소매사업 부문의 비중에 따라 주요 발전사의 실적이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크레딧사이트의 전력 애널리스트인 앤디 데브리는 "주요 발전사 중 캘파인은 소매사업 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 주가 하락폭이 크지 않았다 "며 "소매사업 부문의 비중이 큰 비스트라와 NRG에너지는 주가 하락을 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NRG에너지의 주가는 지난 16일 8.1% 가량 하락해 11개월 만에 장중 최대 하락세를 나타냈고, 비스트라의 주가도 역시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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