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과 제1차 분산에너지활성화 로드맵의 모습대로라면 2030년 경 우리 전력계통에 존재하는 각종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분산에너지원의 개수는 천만개 단위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송전계통운영자인 전력거래소가 관리하는 수백개 단위의 발전소 규모에 비하면 아예 다른 차원의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이 도래하기 까지 10년 남짓 남았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 배전 중심의 운영의 분권화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력계통에 일어나는 첫 번째 변화는 소위 Decentralization이라고도 번역되는 “발전원의 분산화”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분산된 발전원을 기존의 전력계통 운영방식이 감당할 수 있을까? Devolution이라고 번역되는 “운영의 분권화”가 뒤따라와야 한다. 수백개 규모의 발전원을 관리하는 송전계통운영자의 시스템에 더해 하위 배전계통에서 자기 지역을 관리하는 유사 구조의 시스템이 수천개 이상 전국에 깔리기 시작해야 한다. 송전계통을 관리하는 Transmission System Operator (TSO)의 역할을 지역 배전계통 단위에서 대신할 Distribution System Operator (DSO)들이 필요한 것이다. TSO는 중앙정부, DSO는 지방정부로 비유하면 전력계통의 지방분권, 지방자치제도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 DSO가 진짜 필요한가?

동일하게 재생에너지 확산을 외치면서도 정작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무한히 계통을 확장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계통 투자비 절감이 분산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명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주장들대로라면 분산에너지원의 확장을 위해 망 투자비용이 오히려 늘어나야 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전통적인 배전계통은 전력의 판매를 위한 영업 인프라에 불과했고, 고장이 나면 신속하게 복구하고 전압이 이탈하지 않도록 잘 유지하는 것이 주요 업무에 불과했다. 따라서 발전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과거의 배전계통에서는 송전망 운영을 위해 전력거래소가 수행하는 장기계획, 수요예측, 전일 기동정지계획, 보조서비스 운영, 시장운영 기능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능동적 운영기능이 없다보니 재생에너지의 접속은 실제 운영단계에서 별다른 제어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용량만 받아들이고, 여유용량이 부족하다면 선로를 증설한 뒤 접속을 허가하는 Connect-and-Forget 방식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었다. 현재의 배전 운영방식을 고수한다면 분산에너지원의 편익을 살릴 수 없는 망 투자만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배전계통 단위에서도 분산에너지원에 대한 능동적인 제어를 할 수 있는 DSO가 존재한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태양광발전원이 정격출력(kW)의 70% 이상을 발전하는 상황은 연간 발전량(kWh)로 보면 3%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DSO가 배전계통 상황에 따라 태양광 발전과 같은 분산에너지원의 출력을 제어하거나 최적으로 ESS에 저장한다면, 같은 망 투자예산으로 분산에너지원을 30% 가까이 더 접속시킬 수 있다.

- DSO의 구현을 위해 준비할 것은?

DSO의 핵심은 Operator라는 단어에 있다. 계통의 운영을 담당하는 Operator는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발전이나 판매부문과 같은 경쟁부문과는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한전이 판매를 독점하고 전기신사업도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라 배전계통에서의 망중립성 위반 행위의 대상이 유의하게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한전이 DSO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최소 판매부문의 법인분리가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RIIO라는 규제체계 안에서 다수 지역 배전사업자들이 자신의 투자계획과 기술혁신 로드맵, 소비자 만족도 등의 지표를 통해 성과를 경쟁하고 전문 규제기관의 평가에 따라 차년도 배전망 요금과 R&D 예산의 형태를 통해 인센티브를 부여받는다. 우리나라도 DSO들의 효율적 투자와 기술혁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수 DSO 운영단위 간 성과경쟁과 이 결과의 평가를 통해 유형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전문화된 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송전계통은 TSO가 배전계통은 DSO가 운영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TSO-DSO 간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양자 시스템의 상호운용성을 높이고 조직 간 협력도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전압 수준별로 다른 주체가 운영하지만 결국 계통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천만 분산에너지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 전력산업의 두 번째 개혁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프로필 ▲한국에너지공단 비상임이사 ▲산업부 제1차 분산에너지활성화 로드맵 워킹그룹 전문위원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저감위원회 전문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수소경제위원회 위원 ▲서울대 공과대학 전기공학부 박사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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