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배터리 신사업 3개월째 진척 못내
소유권자 지자체 ‘선례’ 요구하며 배터리 안 내줘
이미 중국산 시중 유통…중앙부처-지자체 공조 필요

지난해 5월 12일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규제샌드박스 민간접수기구 간담회에서 정세균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2일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규제샌드박스 민간접수기구 간담회에서 정세균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정부의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한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한 신사업이 수개월째 착수도 못하고 있다. 사용후 배터리의 소유권은 지자체에 있는데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선례가 필요하다는 보신적 행정으로 업체에 배터리를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시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고 있는데 공무원 행정은 아직도 구석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며 크게 한탄했다.

지난 27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9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제4차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한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한 실증특례 사업 중 일부가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업에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A사는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해 캠핑용 등에서 사용하는 소형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제작하는 실증특례 사업을 제안해 허가를 받았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한 시장도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관련 기준이 없어 사업화가 불가능하다.

이에 산업부는 임시로 규제를 완화해주는 규제샌드박스 정책을 통해 관련 규제를 2년간 유예함으로써 신사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관련 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인 A사는 제안사업이 높은 경쟁을 뚫고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하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제품제작을 위해 수억원을 들여 관련 부품도 주문하고 생산인력도 보강했다.

하지만 A사는 이내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사용후 배터리를 확보하기 위해 소유권자인 전국 지자체를 모두 찾아다녔지만 배터리를 내주는 곳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A사에 요구한 배터리를 내주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선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말하길 배터리를 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선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며 “만일 사고라도 나면 불똥이 지자체로 튈 것을 염려한 처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업이 지체될수록 고정비용만 빠져나가자 A사는 다급하게 사용후 배터리를 담당하는 환경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환경부도 이에 응해 모든 지자체에 협조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 지자체가 A사의 사업에 호응을 보이는 진척이 있었으나 나머지 지자체는 여전히 선례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전기차 구매 시 지자체의 보조금이 지급되면서 지난해까지는 폐차 시 발생하는 사용후 배터리의 소유권이 지자체에 있었다. 지난해 12월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해부터는 차량 소유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판매된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 소유권은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운행기간을 감안하면 앞으로 5~6년까지 발생하는 사용후 배터리는 모두 지자체가 소유하게 된다.

현재 전국 시‧군 단위 지자체는 창고 등에 사용후 배터리를 보관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20MW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미 국내는 캠핑 바람을 타고 소형 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배터리는 중국 수입산이 사용되고 있는데 신품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수입되고 있어 중고로 의심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산 사용후 배터리는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데 국내산 사용후 배터리는 실증도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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